20세기 한국불교를 빛낸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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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불교를 빛낸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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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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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온갖 망념을 다 쉬고 차분하게 자신에로 침잠하는 사색의 계절, 잎은 져도 힘은 뿌리에 축적되어 또 하나의 연륜을 보태는 성장의 겨울철입니다. 음력 시월 보름에서 돌아오는 새해 정월 보름까지 석달간의 동안거, 산중 선원에 드신 스님들은 정진의 불꽃을 불태울 것입니다.
원각경 원각보살장에는 "청정실상에 머물어 대원각(大圓覺)으로써 가람을 삼고 안거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수행을 하든 수행의 바탕에는 이런 믿음과 마음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비록 몸은 삼독의 불길이 치성한 거리에 처해있을지라도 믿음의 세계에서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맑은 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재가수행에서 맑은 정진을 있게 하는 것은 한낱 수행일과를 지키는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의 크신 은혜 속에 사는 생명이고 환경이고 생활임을 알 때 우리는 감사한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받아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가 감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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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鏡虛) 스님
비뚤어진 것은 비뚤어진 대로 곧다.
비뚤어진 나무는 비뚤어진 대로 곧고, 찌그러진 그릇은 찌그러진 대로 반듯하며, 불량하고 성실치 못한 사람은 그대로 착하고 성실함이 있느니라.

1849년 전주 출생. 1857년 9세에 광주 청계사에서 계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
동학사 만화 스님에게 경학을 배우고 내외전을 두루 섭렵 통달, 1871년 동학사 강사, 1879년 3개월 동안 철저하게 정진하여 확철대오.
1880년 홍주 천장암, 서산 개심사, 부석사 등에서 납자 제접. 1904년 안변 석왕사 오백나한 개금불사에 증명법사로 참여했다가 자취를 감추고 만행. 1912년 함북 갑산에서 세수 64세, 법랍 55년으로 입적.

수월(水月) 스님
도를 닦는다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마음을 모으는 거여. 별거 아녀, 이리 모으나 저리 모으나 무얼 혀서든지 마음만 모으면 되는겨. 하늘천 따지를 하든지 하나둘을 세든지 주문을 외우든지 워쩌튼 마음만 모으면 그만인겨.

1855년 충남 홍성 출생.
1883년 서산 천장사에서 태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
1887년 천수주로 확철대오.
월정사 상원암, 묘향산 비로암에서 참선 수행, 만주 지방에서 자비 보살행을 펼쳤으며 1921년 중국 왕청현 나자구에 화엄사를 짓고 8년 동안 주석하다 1928년 7월 16일 세수 74세, 법랍 45년으로 입적.

용성(龍城) 스님
마음가는 곳에 부처님 계시니 일과 이치에 불공(佛供)하라.

1864년 전북 장수 출생.
1879년 해인사에서 화월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
1884년 칠불암 대은 율사의 계맥을 이음.
1911년 종로구 봉익동에 대각사 창건, 선학원을 세워 대중 포교.
1919년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 서명, 독립운동.
1921년 대각교 창립, 삼장역회 조직하여 역경사업. 화엄경, 원각경, 금강경, 기신론, 능엄경 등 30여 경 번역. 직접 오르간을 치며 찬불가 보급. 1928년 「무아(無我)」 간행, 1927년 함양에 화과원을 만들어 군자금 지원, 칠불사 , 망월사, 천성산 내원사 등에서 납자 교화. 1940년 세수 77세, 법랍 61년으로 입적. 저술로 『귀원정종』 『각해일륜』 『수심론』 『청공원일』 『어록』 등 다수가 있다.

만해(萬海) 스님
세상사람들은 성공과 실패를 따라 일을 하려 든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되었다. 성공과 실패보다도 그 일이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를 먼저 분별하여야 한다. 그 일이 설령 실패한다고 하여도 부끄럽지 않은 옳은 일이라면 용감하게 그 길로 가라.

1879년 충청도 홍주에서 탄생.
1904년 설악산 백담사에서 출가 득도.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 주도. 최고형을 치름.
1926년 『님의 침묵』 시집 발행.
1944년 서울 성북구 성북동 심우장에서 열반.

만공(滿空) 스님
내가 이 산중에 와서 납자(衲子)를 가르치고 있는 지 40여 년인데, 나를 찾는 이가 적지 않았지만, 찾아와서는 다만 내가 사는 집인 이 육체의 모양만 보고 갔을 뿐이요, 정말 나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를 못 보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를 못 보는 것이 곧 자기를 못 본 것이다.

1871년 전북 태인 출생.
1884년 서산 천장사에서 경허 스님을 계사로 출가 득도하고, 10여 년간 선을 배웠다.
1901년 통도사 백운암에서 새벽 종소리를 듣고 활연대오. 수덕사, 정혜사, 견성암, 마하연에서 선풍을 떨쳤으며 마곡사 주지 역임.
1946년 덕숭산 전월사에서 세수 76세, 법랍 62년으로 입적.

석전(石顚) 스님
들쑥날쑥하는 뜬 구름 같은 생명을 잘 구원함이 대장부의 마땅한 대업이다. 이와 같이 하지 않고 만일 초급적 배움에 편승하여 그 뜻이 밝지 아니하고 고매하지 아니하면 비열한 자기 생명에 마음의 눈이 암담하여 거친 골짜기에 작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1870년 전북 완주 출생.
1888년 전주 위봉사에서 금산 화상의 법제자로 출가 득도.
1892년 순천 선암사의 경운 스님에게서 대교 수학. 석왕사, 신계사, 건봉사에서 안거.
1912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 전신) 교장,
1926년 개운사 대원암에 불교 강원 설립, 후학 지도.
1929년 조선불교 교정.1931년 불교 전문학교 교장.
1933년 조선불교 중앙총무원의 초대 교정(宗正) 역임.
1948년 정읍 내장사에서 세수 79세, 법랍 61년으로 열반.

한암(漢巖) 스님
도(道)가 본래 천진하면 방소(方所)가 없어서 실로 가히 배울 게 없다. 만일 도를 배운다는 생각이 있다면 문득 도를 미(迷)함이 되나니, 다만 그 사람의 한 생각 진실됨에 있을 뿐이다. 또한 누가 도를 모르리오마는, 알고도 실천을 하지 않으므로 도에서 스스로 멀어지게 되느니라.

1876년 강원도 화천 출생.
1897년 금강산 장안사에서 행름 화상을 은사로 출가 득도.
1899년 경허 스님으로부터 인가.
1910년 평북 맹산군 우두암에서 확철대오. 건봉사(1921년), 봉은사(1925년) 조실, 조계종 초대 종정(1936년) 역임. 보조법어 편집,
1951년 상원사에서 세수 76세, 법랍 55년으로 입적.

만암(曼庵) 스님
탐업(貪業)은 바로 일만 장애문의 근원이 됨을 철저히 체득할진저. 그리고 끝으로 번뇌가 바로 보리의 행임을 통달하지 못하면 또한 한 방망이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하, 이것이 무엇이냐?

1876년 전북 고창 출생.
1889년 장성 백양사에서 도진 스님을 은사로 득도.
1929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 전신) 교장 취임.
1946년 호남 고불총림(한국최초의 총림) 결성, 선교겸수의 종합도량 설립,
1947년 종립 정광고등학교 설립 교장 취임.
1948년 조선불교 교정에 취임.
1954년 조계종 종정 취임,
1956년 세수 81세, 법랍 71년으로 백양사에서 입적.

석우(石友) 스님
망상(妄想)을 말라.

1875년 경남 의령 출생. 설총의 45세손.
1912년 장안사에서 연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 유점사의 차선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이후 사제인 상월 스님과 20여 년간 영원암에서 수행.
1932년 지리산 칠불사로 옮겨 수도.
1955년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으로 추대됨.
1958년 세수 84세, 법랍 47년으로 동화사에서 입적.

금오(金烏) 스님
불자들이여! 불법은 다만 마음을 돌려 비춰보는 데 있는 것이니 마음을 반조(反照)하지 못하면 바깥 물(物)에 쫓기고 전도(顚倒)되어 억겁토록 고향엘랑 돌아가지 못해 부자유함이 한정없을 것이니 그 괴로움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1896년 전남 강진 출생.
1911년 금강산 마하연에서 도암(道岩) 스님을 은사로 출가득도.
1923년 예산 보덕사에서 보월 스님 회상에서 공부.
1925년 만공 스님으로부터 보월 스님 사법 인정 건당.
1935년 김천 직지사 조실.
1955년 조계종 부종정.
1958년 조계종 총무원장.
1957년 법주사 조실 역임.
1958년 10월 8일 세수 73세, 법랍 57세로 법주사에서 입적.

고봉(古峰) 스님
남의 집 부처를 건드리지 말고
자성(自性) 속에서 법(法)을 구하라.

1890년 대구 출생.
1911년 상주 남장사에서 혜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
1915년 팔공사 파계사 성전선원에서 견성오도.
1922년 만공 스님에게 법맥을 이어받고 고봉이라는 호를 받음.
1929년 대구에서 청년회 조직, 독립정신 선양, 상해의 독립군 돕다가 투옥. 서봉사, 백운사 조실 역임. 1950년 마곡사 은적암에서 선회를 열고 선법을 지도하였다.
1961년 서울 화계사에서 세구 70세, 법랍 50년으로 입적

동산(東山) 스님
감·인·대(堪·忍·待)
견디고 참고 기다리자.

- 한평생의수행정진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웠던 정화불사의 기간 중에 좌우명으로 삼으신 것.

1890년 충북 단양 출생,
1912년 범어사에서 용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 범어사 강원 수료. 금강산 마하연 등에서 수십 안거 성만. 1927년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오도. 범어사 조실(1935년). 해인사 조실(1936년), 조계종정 역임.
1965년 3월 15일 범어사 금강계단 보살계 산림 주관. 3월 23일 범어사에서 세수 76세, 법랍 53년으로 열반.

효봉(曉峰) 스님
사람마다 그 발밑에 하늘 뚫을 한 가닥 활로 [一通天活路]가 있는데, 대중은 과연 그 길을 밟고 있는가? 아직 밟지 못했다면 장님과 같아 가는 곳마다 걸릴 것이다. 그러나 한번 그 길을 밟으면 이른바 칠통팔달이요, 백천 가지를 모두 깨달아 밝히지 못할 것이 없고 통하지 못할 이치가 없을 것이다.

1988년 평남 덕양 출생,
1925년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에서 석두 스님을 은사로 출가, 수십 안거를 성만.
1935년 한암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음.
1946년 해인사 가야총림 방장,
1958년 조계종 종정, 1962년 통합종단 조계종 종정 역임.
1966년 밀양 표충사에서 세수 79세, 법랍 42년으로 열반.

청담(靑潭) 스님
누에가 제 입으로 실을 내고 번데기가 되어서 고치 안에 갇히듯이 사람도 전부 천당이나 지옥도 제가 만들어서 구속되고 얽혀 있으므로 이런 윤회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울 수 있도록 사람을 지도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

1902년 경남 진주 출생.
1926년 경남 고성군 옥천사 입산.
1927년 5월 영호 스님을 은사로 득도수계.
1930년 5월 서울 개운사 대원불교전문강원대교과 졸업. 만공 선사 제자로 수도.1931년 진주 연화사 첫 법회. 청년회 조직. 1934년 수덕사 만공 선사로부터 인가 받음.
1955년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 대각회 총재 .1961년 삼각산 도선사 중창 , 주지.
1964년 재단법인 동국학원 이사장.
1966년 조계종 통합종단 제2대 종정추대.
1970년 조계종 총무원장. 세계불교연합 장로원장 역임. 국민훈장 무궁화장 받음.
1971년 세수 70세, 법랍 45세로 입적.

전강(田岡) 스님
금일 대중들에게 분명히 이르노니 백천만겁은 몸으로써 보시할지라도 소소영령한 주인공인 본각(本覺)을 얻은 것만 같지 못하리라.

1898년 전남 곡성 출생.
1913년 해인사에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출가 득도. 23세에 견성오도. 25세에 만공 선사의 법맥을 이음. 33세의 젊은 나이로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도봉산 망월사, 부산 범어사, 대구 동화사 조실을 두루 역임하고, 말년에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 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 역임.
1974년 인천 용화선원에서 세수 77세, 법랍 61년으로 입적.

해안(海眼) 스님
아무리 미련하고 못난 사람이라도 칠일이면 도를 성취한다.칠일 동안 공부하는 사람답게 목숨을 내걸고 철저하게 정진한다면, 기필코 영원한 보배를 얻게 된다. 죽기로써 대들어야 영원한 살길이 열리지 어설피 살려고 버둥대면 오히려 죽게 된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1901년 전북 부안 출생.
1914년 전북 내소사에서 만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득도.
1917년 백양사에서 만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백양사에서 지방학림 입학.
1918년 은산철벽 화두를 통해 활연대오.
1920년 불교중앙학림 입학 수료.
1922년 백양사에서 대선법계 품수. 북경대학에서 2년간 불교학 연수.
1932년 계명학원 설립, 서래선림 창립 지도 육성. 내소사, 금산사 조실 역임.
1974년 변산 서래선림에서 세수 74세, 법랍 62년으로 입적. 저서로 『해안 강의 금강경』과 시집 『시심시불(是心是佛)』 『해안집』 등이 있다.

운허(耘虛) 스님
경학(經學)은 마치 콩나물을 기르는 것과 같아서 들으면 잊고 들으면 또 잊어 남는 게 없다. 그러나 꾸준히 바치면 나중에 차츰 무엇이 보이고 들릴 것이다.

- 머리가 나빠서 경학을 걷어 치우겠다고 학인들이 투정을 하면 으레 타이르시던 말씀

1892년 평북 정주 출생.
1913년 중국 봉천성 동창학교 교사를 지냈고, 비밀단체인 대동청년단 가입.
1915년 봉천성에 홍동학교와
1918년 배달학교 설립 교포 아동 교육 전념.
1919년 서로군정서 기관지인 한족신보 사장 역임. 독립운동기관인 광한당 조직.
1921년 유점사에서 경송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
1929년 봉천성 보성학교 교장 역임.
1936년 봉선사에 불교 강원 설립. 동학사, 해인사, 봉선사 강사와 봉선사 주지 역임.
1946년 광동중학교 설립 교장, 이사장.
1961년 국내 최초로 불교사전 편찬,
1964년 동국역경원 설립 원장 취임,
1963년 대통령 표창,
1974년 한글학회 감사패 받음.
1980년 세수89세, 법랍 59년으로 입적. 주요 역저서로 『무량수경』 『범망경』 『불교사전』 등 다수가 있다.

묵담(默潭) 스님
마음속에 사심(私心)이 있으면
극락일지라도 가시가 돋아나고,
마음속에 사심(私心)이 없으면
지옥일지라도 연꽃이 피어나도다.

1896년 전남 담양 출생.
1906년 장성 백양사에서 순오 선사를 은사로 출가득도. 백양사 불교 전문강좌 사미과,사교과 졸업. 70여 안거 성만,
1954년 조계종정.
1975년 태고종정.
1982년 담양 용화사에서 세수 86세, 법랍 75년으로 입적.

경봉(鏡峰) 스님
사람과 물질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사바세계를 무대로 연극 한 마당 멋들어지게 하다 가거라.

1892년 경남 밀양 출생.
1907년 통도사 성해 화상을 은사로 출가 득도.
1911년 명신학교 졸업.
1912년 해담 스님께 비구계 수지. 통도사 강원 수료. 만해 스님께 화엄경을 수학.
1916년부터 내원사, 마하연, 해인사에서 참선 수행. 1925년 통도사 만일 염불회 창설,
1927년 통도사 극락선원에서 용맹정진하던 중 활연대오.
1932년 통도사 전문 강원 원장, 1935년 통도사 주지,
1941년 조선불교 중앙선리 참구원 (선학원) 이사장,
1953년 통도사 극락선원 조실로 추대,
1973년 매월 첫째 일요일에 정기법회 개최.
1982년 세수 91세, 법랍 75년으로 입적. 저서로 『법해』 『속법해』 『원광한화』등이 있으며, 서도집 『선문묵일점』 『경봉』 『서간집』 『화중연화소식』 『삼소굴일지』『삼소굴소식』 등이 있다.

구산(九山) 스님
아침 저녁으로 부지런히 수행하는 사람은 진성(眞性)이 발명하여 중생들을 이익케 하니,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외를 심으면 외를 따듯이 그 인과 (因果)가 털끝만큼도 틀림이 없으니 법다이 수행하여 범부를 고쳐서 성인을 이루고 지상의 낙원을 성취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1910년 전북 남원 출생.
1937년 송광사에서 효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
1939년 통도사에서 치익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통도사, 해인사 등에서 수선 안거.
1951년 효봉 스님께 전법게를 받음.
1961년 광양 상백운암에서 오후보림(悟後保任). 동화사 주지, 조계종 감찰원장, 송광사 조계총림 방장, 전국 불일회 초대 총재, 동국대학교 이사 역임.
1983년 송광사 삼일암에서 세수 75세,법랍 46년으로 입적. 저서로 영문판 법어집 『NINE MOUNTAINS(九山)』 『The way of korean zen』, 법어집 『석사자』가 있다.

탄허(呑虛) 스님
공부를 한다는 것은 분명히 밝히지만 연습이 아니다. 당대에 무아(無我)가 되자는 발심을 해야 한다. 무아의 경지를 볼 수 있으면 더욱 좋고 보지 못한다고 해도 공부는 분명히 내생에 훨씬 뛰어난 것을 만드는 인(因)이 된다.1913년 전북 김제 출생.

1934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한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 3년간 묵언참선 용맹정진. 15년간 오대산문 불출(不出)정진. 월정사 조실, 오대산 연수원 원장, 동국대학교 대학선원원장,
1967년 조계종 초대 중앙역경원장 역임. 팔만대장경의 한글화 작업에 투신, 『한글대장경』 간행.
1983년 세수 71세, 법랍 49년으로 입적.

혜암(惠菴) 스님
일체 중생이 나고 죽을 때 육체만을 보고 나고 죽는다 하지만, 생(生)과 사(死)는 본래 없는 것이다. 개개인의 그 신령스럽게 비치는 불성(佛性)은 일체 중생이 고금(古今)을 통하여 그것을 수용해 오지마는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개개인이 본래 갖추고 있는 참 면목인 것이다.

1886년 황해도 백천 출생.
1897년 경기도 남양주군 흥국사에서 출가.
1900년 보암 스님을 은사로 금운 스님을 계사로 득도.
1911년 해담 스님으로부터 구족계 수지.1924년 통도사 성월 선사 회상에서 오도.
1929년 수덕사 만공 선사로 부터 전법게 수지.
1956년 수덕사 조실로 추대.
1985년 수덕사에서 세수 100세, 법랍 88년으로 입적.

고암(古庵) 스님
마음이 깨끗하면 온 세계가 깨끗하다. 이 마음 광명은 언제나 새해, 새마음이며 생로병사,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없어 언제나 남을 미워하거나 시기하지 않는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언제나 새마음을 일으켜 사섭법(四攝法)을 실행하면서 잘 살아가자.1899년 경기도 파주 출생. 19세 되던 해 합천 해인사에서 제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

1922년 해인사에 서 용성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및 보살계를 수지하고, 전국 여러 선원에서 25하안거를 성만. 46세 때 대선사 법계와 9년 뒤 대종사 법계를 품수하고,
1967년 조계종 종정을 3, 4, 6대 세 번 역임.
1988년 가야산 해인사에서 세수 90 세, 법랍 71년으로 입적.

자운(慈雲) 스님
예경으로 토양을 삼고, 참회로 거름을 삼으며, 계율로써 울타리를 삼아 싹을 틔우는 인(因)을 만들고, 예경과 참회, 지율지계로 정진하는 바 제불이 환희하고 감응하니 바로 빛과 공기로 증장의 연(緣)이 되는 바다. 예경과 참법을 선양하고 율풍을 진작함이 불법중흥의 근본이라 여김이 이에 있다.

1911년 강원도 평창 출생.
1927년 해인사에서 혜운 스님을 은사로 한규 화상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35년부터 3년 동안 울진 불영사에서 장좌불와로 결사.
1938년 도봉산 망월사에서 용성 대선사로부터 전법게와 의발을 전수받았다.
1955년 해인사 주지.
1956년 재단법인 해인학원이사장. 조계종 경남도무원장.
1958년 조계종 감찰원장,
1967년 범어사 주지.
1976년 조계종 총무원장.
1977년 재단법인 대각회 이사장.
1981년 종단 단일계단전계화상.
1987년 동국역경원장.
1992년 해인사 홍제암에서 세수 82세 법랍 66년으로 입적.

성철(性徹) 스님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본래 순금입니다. 욕심이 마음의 눈을 가려 순금을 잡철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나만을 위하는 생각은 버리고 힘을 다하여 남을 도웁시다. 욕심이 자취를 감추면 마음의 눈이 열려서, 순금의 자기를 바로 보게 됩니다.

1912년 경남 산청 출생.
1936년 동산 스님을 은사로 수계 득도. 금강산 마하연 등 제방선원에서 안거.
1940년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오도송 읊음. 제방선원에서 안거.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 아래 공주규약을 만들고 결사에 들어감.
1955년부터 10여 년간 팔공산 성전암에서 동구불출.
1967년 해인총림 초대방장에 취임, 백일법문.
1981년 대한불교조계종 제7대 종정 취임
1993년 해인사 퇴설당에서 열반

광덕(光德) 스님
본래 우리는 이미 성불이 되어 있는 것이고, 만인이 부처님으로서 존경받아야 될 사람들입니다. 남한테 존경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도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믿고, 알고, 회향함으로써 완성의 길을 갑니다.

1927년 경기화성 출생.
1950년 범어사 입산.
1955년 범어사에서 동산 선사를 은사로 득도.
1956년 대각회 창립, 초대회장.
1956년∼67년 봉은사 주지, 학교법인 대동학원 이사.
1966년 학교법인 원효학원 이사.
1971년 조계종 총무원 중앙종회 부의장, 청담 스님 열반시 조계종 총무원장 직무대행(당시 조계종 총무부장).
1974년 재단법인 대각회 이사장, 순수 불교 운동지 월간 「불광」 창간, 발행인.
1975년 불광법회 창립, 법주.
1977년∼95년 학교법인 동국학원 이사 역임.
1979년 불광출판부 개설, 발행인.
1990년∼96년 선찰대본산 범어사 금강계단 보살계 전계대화상.
1993년 재단법인 보덕학회 이사.
1999년 범어사에서 세수 73세, 법랍 50년으로 입적. 저서 『생의 의문에서 그 해결까지』 『보현행원품강의』, 역서 『육조단경』 『선관책진』 등 다수가 있다.

20세기는 두 차례의 세계전쟁과 이데올로기 대립, 그에 이은 자본주의의 독주로 인간의 생명까지 자본의 논리로 이해되는 등 인류 역사상 가장 험난한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고 있는 듯한 양상입니다. 20세기 한국불교사 역시 고난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우리 곁에 오셨다가 가신 수많은 선지식들의 덕화로 정법의 등불이 면면이 이어져 왔습니다. 20세기에 수행하며 정법을 전하신 등불 같은 그분들의 뜻을 기리며 새로운 각오로써 새천년을 맞이한다면 한국불교의 앞날에 이정표가 되리라 믿기에 20세기 한국불교를 빛낸 스님들(입적하신 해 기준)을 한 자리에 모셨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남아있는 자료의 부족으로 수많은 선지식들을 다 모시지 못했사오니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비구니스님들과 재가불자들편은 저희 편집부에 자료가 결집되는 대로 모실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하오니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자료제공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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