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능화는 적어도 1912년 이전부터 조선불교통사 발간까지는 환인과 제석을 동일시하였으며, 어느 순간 환인과 제석을 분리하기 시작한다. 환인과 제석을 동일시한 것은 삼국유사에 나타난 일연 스님의 주석으로부터 시작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전 기사 : 이능화, 불교계에 단군을 논하다 ①, 이능화 제석환인에 대한 오해와 수정 ②.)
환인에서 환국으로
이능화는 ‘조선신사지’글을 쓰기 시작할 즈음에서는 제석과 환인을 분리하여 이해하였다. 그리고 환인을 환국으로 변화시켰다. 더는 ‘환인≠제석’이었으며, 환인이라는 신으로부터 환국이라는 공간으로 변화한다.
이능화는 조선신사지에서 그 계기를 소상히 적는다.
“얼마 전에 교토 제국대학 문학부에서 기증받은 것이 정덕(正德) 임신(壬申) 경주 간행본 『삼국유사』였다. 이것을 빌려서 이 책의 본래의 면목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안정복(安鼎福)에 이르러서 붓으로 환국(桓國)의 ‘국(國)’자를 지우고 환인(桓因)의 ‘인(因)’자로 고쳐 만들었으니 흔적이 완연하다. 내 생각으로는 안정복이 환국 밑에 각주(제석을 말한다)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환국의 ‘국’자는 필시 환인의 ‘인’의 착오인 것으로 여겨 마침내 함부로 고쳤던 것이다”라고 적은 것이 그것이다.
이능화가 임신본 삼국유사에서 환인을 환국으로 본 것이 환인과 제석의 이해에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이른바 환인 환국 쟁점의 씨앗이 배태된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글은 「조경철, 단군신화의 환인환국 논쟁에 대한 판본 검토, 한국고대사 탐구 23, 2016」를 참조)
임신본의 유통이 이능화 최남선 같은 사학자들에게 환국에 대한 열정을 돋아나게 한 것이다.
이능화는 거듭 “어떤 이는 환국을 환인으로 쓰고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환국은 고어에서 천국(天國)의 뜻이다.”라며 특별히 강조한다.
이제, “환국(桓國)은 천국이 되었고, 환인은 천주(天主)”가 되었으며, “환국은 해 솟는 나라이며, 조선이란 환국의 역의(譯義)”로 나아가게 된다.
이능화가 고찰하던 천신(天神) 신앙의 얼개가 ‘조선신사지’에 이르러 제대로 그려지게 된다. 책에서 ‘조선의 천신 신앙이 동북아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우리 역사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이능화의 주된 연구주제였다.
조선적인 것을 찾아
천신 신앙은 불교와 독립된 영역으로 이해되었다. 천신 신앙과 조선의 ‘고유한 종교’는 불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게 된다.
이능화에게 불교는 단순히 신앙의 영역이 아니었다. 조선적인 것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역사학자’ 이능화에게 불교는 중요한 곳간이기도 했다.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가 발간되기 이전 다른 글에서
“불교가 해동에 수입된 이래로 천오백 년에 걸쳐 국교”였으며 “천오백 년의 오랜 종교이기에 역사도 여기에 관련되며, 문화도 여기에 있으며, 인물도 여기로부터 나오고 풍속도 여기로부터 나타났고”, “조선의 역사는 불적(佛蹟)과 나눌 수 없으며, 조선 내 명승지역에 불보살 명호로 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조선 지방을 불국토로 인식”하였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능화가 삼국유사를 읽은 것은 조금 늦은 시기일 수 있다. 아마 삼국유사를 일찍 읽었더라면 이능화가 수많은 글을 쓰던 불교계 잡지 어느 곳에선가 인용되었을 듯하다.
조선과 불교를 연결하고자 했던 이능화에게 삼국유사의 발견과 ‘환인(제석)-환웅-단군’의 계통은 조선적인 것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불교도’였으며 ‘역사학자’이기도 하였던 이능화에게 어쩌면 한 줄기 빛이었을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1. 이능화저·이재곤역, 조선신사지, 동문선
2. 이능화,「佛敎信仰의 過去時代와 佛敎信仰의 現今時代를 論」,『진흥회월보』4호
3. 조경철, 단군신화의 환인환국 논쟁에 대한 판본 검토, 한국고대사 탐구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