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이능화는 자신의 대표작 『조선불교통사』를 발간한다. 이능화가 불교에 입문한 시기를 1907년 정도로 보면 10년간의 노력을 집대성한 책이다. 책에 단군과 관련된 장이 두 번 나온다.
(이전 기사 : 이능화, 불교계에 단군을 논하다 ① )
제석환인에 대한 오해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서 환국, 환인을 설명하면서 “제석을 말한다”라는 주석을 달았는데, 이능화 역시 조선불교통사에서 환인을 제석으로 본 것이다. 일연 스님의 주석을 이어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를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조선불교통사에 나와 있는 문단을 살펴보면,
① 불경(佛經)을 살펴보건대, “삼십삼천(三十三天)은 도리천(忉利天)이다. 수미산 정상에 있다. 천주(天主)는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는데, 곧 제석(帝釋)이고 호는 옥황상제(玉皇上帝)이다. …”고 하였다. (법화경 주석에 보인다.)
② 도리천은 욕계 6천 가운데 두 번째로, 주로 이 세계의 하늘을 다스린다. 또한 『고금기(古今記』를 살펴보면, “환인은 하늘이고, 환웅은 신이고, 단군은 신인이니, 이를 삼신(三神)이라 이른다.”하였다. 이것이 불교의 이른바 제석으로, 이름과 호가 서로 같다.
이능화가 두 단락을 들어 말하고 싶은 것은 ‘불경과 고금기에 공통적으로 하늘의 주인을 환인이라 하고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제석이다’라는 것이다. 즉 환인을 제석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국내 사찰에서 반드시 제석과 환인의 위(位)를 봉안함은 또한 이러한 뜻이다”라는 『풍속고(風俗考)』를 들어 불교에서 제석, 즉 환인을 숭배해 왔음을 말하고 있다.
이능화가 1912년 임제종 개교식에서 “불가에서도 단군을 삼천 년 이후로 지금까지 숭봉하며”라고 주장한 내용은 1918년 발간 조선불교통사에 이르기까지 큰 틀에서 변함이 없다.
이 부분을 이해했을 때, 이능화가 조선불교통사 내에서 단군 신앙을 강조하는 것이 납득할 수 있다. 이능화는 ‘단국환인내천제석(檀國桓因迺天帝釋)’ 단락에서 천신 신앙을 열거하고 ‘조선고대신교이행(朝鮮古代新敎已行)’단락에서 단군 신앙을 중심으로 여러 종교를 비교한다.
즉, 1912년에 있었던 이능화의 임제종 포교당 개교식에서 단군에 관한 연설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희망과 믿음이었다.
제석환인에 대한 수정
환인을 제석으로 보았던 이능화는 1929년 희망과 믿음을 포기한다. 이능화는 학술지 『조선(朝鮮)』에 1월부터 12월까지 단군과 천신 신앙에 관한 글을 연재하는데, 연재 글이 『조선신사지(朝鮮神事誌』라는 책으로 발간된다.
조선불교통사에서 환인을 제석으로 보고, 이를 근거로 단군 천신 신앙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였던 이능화는 이 책에서 돌연 일연 스님의 시각을 비판한다.
“일연 선사에게도 한가지 실수가 있으니”, “일연 선사가 환국 아래에 망령되게 ‘제석을 말한다’로 주석을 붙여 신사와 천주가 드디어 불교의 제석으로 변하였으니”라며 일연 스님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환국 환인에 대한 비판
일연선사에게도 한 가지 실수가 있었으니, 『고기(古記)』에 “옛날에 환국 <제석(帝釋)을 말한다> 있었으니” 한 부분의 “제석(帝釋)을 말한다”...
이능화의 일연 스님에 대한 비판은 위 단락에 집중된다.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①‘환국’을 ‘환인’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이 첫째이고, ②여기에 덧붙여 환인을 “주석으로 제석을 말한다”라고 표기했다는 점이 두 번째이다.
먼저, 환국을 환인으로 표기한 것에 대해 “뱀을 그리면서 발을 붙이고 살을 깎아서 부스럽게 만들었”으며, “환국의 ‘국(國)’자는 필시 환인의 ‘인(因)’의 착오인 것으로 여겨 마침내 함부로 고친” 것이고, “마침내 신화시대 본연의 진상을 잃고 佛家의 한낱 가면을 낳은 것이다”라며 격렬한 논조로 비판한다.
일부에서 이능화를 비판하면서 조선불교통사에서 환국을 환인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는데,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이러한 비판은 이미 이능화 스스로 해명한 문제이다.
이능화는 오히려 이런 지적을 일연 스님에게 돌리고 있다. 그분들은 조선불교통사만 본 것이다.
제석에 대한 비판
두 번째 점과 관련하여 이능화는 “내 일찍이 『조선불교통사』를 저술하였는데, 단군의 일을 논한 부분에서 현행본 『삼국유사』에 의하여 환국을 또한 제석환인으로 단정하였으니 사실을 밝히지 못한 잘못은 후회하여도 미칠 수 없다”라면서 자신의 오해를 수정한다.
그리고 “석제환인이 또 호를 옥황상제라고 한 것은 도가(道家)의 색채를 띠고 있는데, 이것은 뒷사람의 위주(爲註)임이 틀림없다. 도교와 불교의 혼동이 이같은 데서 빚어지고 있으니 변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한편으로 “『삼국유사』에서 ‘단군이 곡식을 맡았다’ 하였기 때문에 석제환인으로 미고의 주신을 삼았으니, 이는 일연 선사의 환국(桓國)의 주석이 잘못된 소치이다. 변명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하며 이전에 환인과 제석을 동일시한 자신의 오해를 수정한다.
제석이 인드라를 의미한다는 것은 현대의 불교인에게는 상식이고 환인을 제석과 동일시하는 것은 더욱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이능화 시대에는 의외의 상황을 맞이한다.
이능화의 오해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 오해에 대한 수정 이후, 이능화의 목적지는 어디였을까? 상상해보고자 한다. (다음에 계속)
<참고> 번역된 이능화의 글은 다음의 책을 따랐습니다.
1. 조선불교통사역주편찬위원회, 역주 조선불교통사 1-6권, 동국대학교출판부.
2. 이재곤 옮김, 조선신사지, 동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