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혼자 표류하는 기분, 어땠어?” “정말 무서웠어요.” 샌드라 블록 주연의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뭔가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는데,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깨달았다. 부모님의 집을 벗어나 처음으로 독립했을 때 내가 느낀 감정, 그것이 바로 ‘우주를 혼자 표류하는 기분’이었다는 것을. 물론 <그래비티>의 주인공처럼 완전히 우주 공간에 외따로 표류하며 생사의 갈림길에 선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의 두려움은 그에 못지않았다. 중력도 없이 우주를 혼자 표류하는 기분, 바로 그것이었다.
| 독립한다는 것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에는 간섭이 귀찮기는 했지만 삶을 어느 한 점으로 끌어당기는 ‘중력’이 있었다. 그 어느 한 점이 ‘부모의 감시’라는 사실이 자유를 가로막기도 했지만. 나는 자유라는 이름의 산소가 필요해 독립을 꿈꾸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부모님의 보살핌이라는 중력에 의지하고 있었다. 버팀목에 의지하고 있을 때는 그 버팀목의 소중함을 모른다. 그것이 버팀목인지도 모른 채, 증오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나는 독립하고 나서야 부모라는 버팀목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나를 항상 걱정하는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라는 것 자체가 존재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 내 삶이라는 토양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막상 독립을 시작하니 삶의 모든 요소가 뿌리째 흔들렸다. ‘와, 독립이다!’ ‘이제 드디어 혼자다!’라는 해방감은 딱 사흘간 지속했다. 독립한 지 일주일 만에 잇몸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고, 온몸이 아팠다. 영혼의 성장통이기도 했고, 스스로 나의 몸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뼈저린 대가이기도 했다. 언제나 가족들의 복닥복닥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온 나는 처음으로 ‘소리가 사라진 세계’에 맞닥뜨렸다. ‘밥 먹어라!’는 엄마의 부름도, ‘일찍 들어오라!’는 아빠의 잔소리도, ‘언니, 내 얘기 좀 들어봐!’라는 동생들의 수다도 없는 그 무소음의 세계는 한없이 낯설었다.
아주 조용한 세계의 한없는 자유로움을 꿈꾸었기에 독립을 했는데, 막상 독립을 쟁취하니 그 시끄러운 세계가 미치게 그리웠다. ‘인간은 왜 이토록 모순적인 존재인가’ 하는 깨달음도 사무치게 다가왔다. 당시에는 가장 절실한 소원이 바로 독립이었는데, 막상 독립하고 나니 뼛속을 스며드는 외로움이 마음을 초토화한 것이다. 인간은 원하는 것을 쟁취했다고 해서 결코 자동으로 단순하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님을 그때 깨달았다.
혼자 산다는 것은 무척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신나고 재미있는 것은 딱 사흘. 그 사흘의 해방감이 사라지고 나자, 바로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는,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 기쁨’은 사라지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기분,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듯한 단절감이 찾아왔다. 우주를 혼자 표류하는 듯한 기분을 떨쳐내고 ‘꿋꿋하게 혼자 살기’와 ‘타인과 공존하기’를 동시에 배울 때 비로소 내 삶의 진짜 주인공이 되는 것이었다.
| 나만의 언어로 빚어내는 기쁨
내가 혼자 살기의 진정한 기쁨을 깨달은 날은 생애 처음으로 새벽 산책하러 나간 날이었다. 이른 아침 6시쯤, 서울대입구역에서 낙성대공원까지의 길을, 처음으로 혼자 걸었다. 나 홀로 아침 산책을 즐기게 되고 나서야, ‘이 세상’과 ‘나’라는 존재가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보호대를 벗고 드디어 맨몸으로 마주 선 느낌이 들었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마음속에서는 뭔가 눈부신 발걸음이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바로 ‘자기와 대면’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나뭇잎 하나하나, 길가의 돌멩이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왔다. 내 인생의 눈부신 출발선 위에 홀로 선 느낌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비로소 작가가 될 수 있었다. 그전에도 물론 글을 쓴 경험은 있었지만, 아직 내가 작가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뭔가 부족한 느낌,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한 해석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깊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날 이후, 나는 꾸밈없이, 그 어떤 참고문헌도 없이, 내 생각을 쓰기 시작했다. 자기와 대면 이후, 영혼이 독립을 선언하자, 비로소 나와 더욱 열정적으로 만나는 글쓰기가 가능해졌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멍하니 혼자 있는 시간의 아름다움도 그때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온전히 홀로 있는 느낌을 경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그렇게 순수하게 몽상에 잠겨보는 시간, 그렇게 완전히 나와 함께 홀로 있는 기분을 소중히 여기게 됐다. 홀로 아침 일찍 산책한 그 날 이후, 내 영혼은 독립선언을 한 기분이었다. 그 소중한 독립의 체험 이후, 비로소 나는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여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의 기쁨, 무언가를 완전히 나만의 언어로 빚어내는 기쁨을 알게 됐다.
| 진짜 주인공이 되는 시간
독립의 좋은 점은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실험하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견딜 수 있는 외로움의 한계를 알게 됐고, 어쩌면 내가 그 누구의 도움 없이도 평생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보았다. 힘들어도, 외로워도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쳤다. 독립은 단지 원가족(原家族)으로부터의 분리나 경제적 자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독립과 함께 공존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요리와 청소, 빨래 등 기본적인 ‘나를 돌보는 기술’을 습득하기 시작했고, 나 자신을 제대로 돌보고 보살피는 일이 꿈을 이루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요리할수록 세상과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고, 청소할수록 내 안의 깊은 피로와 슬픔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단 하나의 소원이 마음속에 둥지를 틀면서, 내 삶의 진짜 주인공이 되는 실험은 시작됐다. 그러니까 가족으로부터의 ‘독립’과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꿈’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결심이 선 순간. 그 순간 내 인생의 진짜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때 내 마음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슬퍼할 시간이 없다. 후회할 시간도 없다.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독립의 목표는 아주 단순했다. 살아남는 것, 그리고 나다워지는 것. 목표가 오직 살아남는 것밖에 없을 때 인간은 진실해진다. 독립은 한순간의 과업이 아니라 우리가 평생 실천해야 할 마음의 과제이기도 하다. 당신이 매일 홀로서기를 추구하고 있다면, 그래서 미칠 만큼 힘들다면, 당신은 정말 잘 해내고 있는 것이다. 힘들지 않은 독립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홀로서기라는 과제 때문에 죽도록 외롭고 힘들다면, 당신은 인생의 진짜 주인공이 되는 모험에 제대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상상 속 우주 공간에서 중력도, 산소도, 어떤 존재의 도움도 없이 생존의 극한을 체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 안에서 내가 그동안 나도 모르게 의지해왔던 세상의 사랑과, 가족의 애틋함과, 인생살이의 따스함을 배우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내 인생의 진짜 주인공이 되는 시간’임을.
나는 지금도 매일 조금씩 독립하고 있다. 온갖 걱정과 상처로부터,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로부터, 그리고 좀처럼 잘 풀리지 않는 인연의 실타래로부터. 자신의 숨겨진 모든 재능과 지식을 끌어내어 오직 살아남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창조적이고 가장 용감하고 가장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정여울
자신의 상처를 담담하게 드러내며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가.
자칫 스쳐 지나가 버릴 모든 감정과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한 산문집 『마음의 서재』,
심리 치유 에세이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