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대한민국 명상포럼 2일차 이야기
(사)한국명상총협회와 (사)한국참선지도자협회, BBS불교방송이 주최하고 서울특별시와 세계명상총림원이 후원한 <2019 대한민국 명상포럼>이 지난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간 동국대 일원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각계 명상 전문가들이 모인 이번 포럼은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에 명상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과학, 불교, 정신의학 등 여러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자리였다. 강연, 걷기 명상, 종합 토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3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명상이 어떻게 세계 정신 문화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는지, 또 명상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등에 관한 활발한 담론도 이루어졌다. 포럼 기간 내 현장을 찾았으나 동 시간대에 열리는 모든 강연을 참석할 수는 없었다. 선택해 들었던 강연을 중심으로 이번 2019 대한민국 명상포럼을 소개한다.
- 2일차
둘째 날에도 첫날과 같은 장소에서 세 개의 강연이 동시에 열렸다.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금강 스님(선명상 수행법의 길잡이 선가귀감)과, 정신건강의학전문의 전현수 박사(거시적, 미시적 관찰을 통해 본 우리의 존재), 위빠사나붓다선원장 김열권 법사(붓다의 깨달음 호흡명상법- 아나빠나 삿띠)의 강연이 진행됐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대흥사 유나 정찬 스님(시로 읽는 명상의 요체)과 수도암선원 선현 종묵 스님(선수행 명상 방법론의 역사), 불교상담개발원장 선업 스님(마하 화두선과 MTV 통합명상), 자비명상 이사장 마가 스님(잠깐 멈춤 명상법), 대승사 선승 정과 스님(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대해사 국제선원장 대해 스님(AI 인공지능과 IT기업을 이끌고 갈 본질 알고리즘) 강연이 펼쳐졌다.
둘째 날에도 첫날과 같은 장소에서 세 개의 강연이 동시에 열렸다.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금강 스님(선명상 수행법의 길잡이 선가귀감)과, 정신건강의학전문의 전현수 박사(거시적, 미시적 관찰을 통해 본 우리의 존재), 위빠사나붓다선원장 김열권 법사(붓다의 깨달음 호흡명상법- 아나빠나 삿띠)의 강연이 진행됐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대흥사 유나 정찬 스님(시로 읽는 명상의 요체)과 수도암선원 선현 종묵 스님(선수행 명상 방법론의 역사), 불교상담개발원장 선업 스님(마하 화두선과 MTV 통합명상), 자비명상 이사장 마가 스님(잠깐 멈춤 명상법), 대승사 선승 정과 스님(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대해사 국제선원장 대해 스님(AI 인공지능과 IT기업을 이끌고 갈 본질 알고리즘) 강연이 펼쳐졌다.
정과스님 ‘명상과 참선에서의 깨달음’ (강의 자료집 내용 중)
“우리가 ‘와당탕’ 넘어질 때 어때요? 아무 생각 없죠? 놀라고 다급한 마음뿐, 모든 생각이 끊어집니다. 미움도 걱정도 사랑도, 바로 이거예요. 그토록 끊어내려고 하는 시비 분별심이 한순간에 저절로 끊어진 겁니다. 무심(無心)이죠. 본성을 가리고 있던 온갖 생각이 사라지며 늘 거기 있는 본성이 드러난 그 순간, 자기가 바로 그 본성임을 알게 됩니다. 깨달음이죠. 불교 본래 명상은 선 행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선을 가치 있고 높은 것으로 마음에 두는 순간 마음에 있지 않아야 할 것을 들여놓은 것이요,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분별심이 생겨나며, 선 악 간의 싸움이 일어납니다. 더 중요한 건 선악이 본래부터 있는 게 아닌 우리가 만들어 낸 관념일 뿐이라는 겁니다. 본래 마음에는 선악이 없는 것임을 알기에 수행자는 가슴에 선악을 들여놓지 않습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예요. 왜냐면 진실에 눈뜨지 못한 사람들이 꿈꾸는 행복은 뭘 가져서, 성취해서, 내 뜻대로 됐을 때 느끼는 일시적인 행복감이거든요. 이제부터라도 그런 행복을 좇느라 지친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그러면 행복이 옵니다. 저는 깨달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깨달음=위대한 자유. 무엇이 위대한 자유일까요? 명상을 통해서도 이런 깨달음, 위대한 자유가 가능할까요? 명상은 비판단의 알아차림과 쉼입니다. 옳고 그르다, 맞고 틀리다 따위의 판단 없이 일과 사람을 대하는 것이며 좋고 싫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바꾸겠다는 생각도 쉬는 거예요.
“우리가 ‘와당탕’ 넘어질 때 어때요? 아무 생각 없죠? 놀라고 다급한 마음뿐, 모든 생각이 끊어집니다. 미움도 걱정도 사랑도, 바로 이거예요. 그토록 끊어내려고 하는 시비 분별심이 한순간에 저절로 끊어진 겁니다. 무심(無心)이죠. 본성을 가리고 있던 온갖 생각이 사라지며 늘 거기 있는 본성이 드러난 그 순간, 자기가 바로 그 본성임을 알게 됩니다. 깨달음이죠. 불교 본래 명상은 선 행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선을 가치 있고 높은 것으로 마음에 두는 순간 마음에 있지 않아야 할 것을 들여놓은 것이요,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분별심이 생겨나며, 선 악 간의 싸움이 일어납니다. 더 중요한 건 선악이 본래부터 있는 게 아닌 우리가 만들어 낸 관념일 뿐이라는 겁니다. 본래 마음에는 선악이 없는 것임을 알기에 수행자는 가슴에 선악을 들여놓지 않습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예요. 왜냐면 진실에 눈뜨지 못한 사람들이 꿈꾸는 행복은 뭘 가져서, 성취해서, 내 뜻대로 됐을 때 느끼는 일시적인 행복감이거든요. 이제부터라도 그런 행복을 좇느라 지친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그러면 행복이 옵니다. 저는 깨달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깨달음=위대한 자유. 무엇이 위대한 자유일까요? 명상을 통해서도 이런 깨달음, 위대한 자유가 가능할까요? 명상은 비판단의 알아차림과 쉼입니다. 옳고 그르다, 맞고 틀리다 따위의 판단 없이 일과 사람을 대하는 것이며 좋고 싫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바꾸겠다는 생각도 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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