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불광」이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변화를 맞아 불교 잡지를 비롯한 불교미디어가 나 아갈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특별 좌담회를 개최한다. 좌담은 월간 「불광」 유권준 편집주간의 사회로 학계와 불교계, 디지털콘텐츠, 잡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이뤄졌다. 편집자주
참석자. 서재영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 유병탁 IHQ 디지털콘텐츠팀장
윤호우 경향신문 주간경향 편집장 / 정재민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장
사회 유권준 월간불광 편집주간
진행 김우진 월간불광 기자
사진 최배문
사회
오늘 좌담회는 불교 미디어의 현황을 살펴보고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미디어 혁명의 맥락을 검토해 불교미디어들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불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미디어를 가장 잘 활용해온 종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불교의 핵심 가르침이 구전을 통해 전승되다가 결집을 통해 인쇄물로 만들어지고 세계로 전파 되는 과정이나, 활자의 개발, 불화나 각종 불교미술 작품을 보아도 미디어 활용에 가장 적극적인 종교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반도의 상황만 해도 그렇습니다. 목판인쇄를 일찍이 발전시킨 것도 불교계였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가장 먼저 활용한 것도 불교계였습니다. 하나의 사례가 되겠지 만, 고려대장경의 판본을 보면 글뿐만 아니라 다 양한 그림을 활용하던 모습을 봐도 그렇고요.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들 생각하시나요?
서재영
과거에는 종교가 사회를 주도하는 시대였다. 근대까지만 해도 종교인이 과학자이자 철 학자였고 사회를 이끌어 가는 오피니언 리더였 다. 즉 종교가 사회를 이끌어 가는 가장 중요한 집단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지금은 물질적인 토대를 가진 집단이 사회를 이끌어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업이라고 할수있다. 물론 과거를 돌아 보면 불교는 전법을 위해 미디어나 콘텐츠 생산에 대단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최첨단의 과학과 기 술을 이용해 전법에 활용하려 했었던 열정이 있었 다. 법회나, 불화 등 체험 중심의 미디어에 대해 열정이 있었고, 직접 콘텐츠도 만들어왔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사회는 경제적 주체가 이끌어가고 있다. 뉴미디어 환경에서 불교가 기술적으로 선도할 수는 없겠지만 전법에 대한 그런 열정만큼은 계승해야 한다고 본다.
정재민
과거에는 종교가 권력이고 정치의 중심 이었다. 불교도 마찬가지였다. 즉 그런 맥락에서 보면 왜 지금은 종교가 권력이 아닌가, 불교는 왜 권력에서 멀어졌나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대장경이나 직지심경과 같은 미디어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콘텐츠이자 기술이고 권력이었다. 하지만, 기술의 시대가 되면서 콘텐츠와 플랫폼이 분리되기 시작하고 있다. 나아가 플랫폼이 콘텐츠를 지배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즉 과거에는 콘텐츠가 기술을 지배하는 시대였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다 는 것이다. 즉 과거는 팔만대장경이 활자와 목판이라는 미디어를 지배하는 시대였다면 이제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불교라는 콘텐츠를 지배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윤호우
고려의 활자나 구텐베르크의 활자가 처음 인쇄한 것은 불교경전이나 성경이었다. 즉 최신의 기술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종교적 열망 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종교 지도자들의 아우라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러한 열망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불교는 대체로 올드미디어에 더 적합한 종 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체험이나 수행을 중시하는 것도 그렇고 아날로그 지향적인 것이 불교의 특징이 아닌가 하는 생각한다. 공간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지 않나?
유병탁
과거에는 미디어가 콘텐츠를 뿌려주면 수요자들이 대체적으로 그냥 수용하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수요자들이 파워를 갖게 되면서 양상이 변했다. 불교의 경우 수요자들의 심리를 읽어내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고리타분한 느낌, 변화하지 않는 화석 같은 느낌이 여전하다. 콘텐츠나 미디어는 저만치 앞서가는데 불교미디어나 불교는 별로 변화하는 느낌이 없다. 콘텐츠의 유통방법이나 불교는 이래야 한다 는 고정관념이 너무 강한 것 같다.
서재영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보면 “수기요욕 隨其樂欲 성숙중생成熟眾生”이라 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바에 따라 중생을 성숙시킨다”는 말씀이 있다. 중생의 선호를 따라 법을 전달하라는 말씀이다. 카톡이든 영화든 유튜브든 중생들이 즐겨한 다면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전법의 관점에서 보면 불교야말로 뉴미디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정재민
불교 자체가 올드미디어에 적합하다기 보다, 현대인들의 고민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경험을 생각해보면 예전 교수님 께 책갈피를 선물로 받았던 좋은 기억이 있어, 학생 들에게 책갈피를 선물했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쭈뼛쭈뼛 하더라.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책갈피를 꽂을 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학생들이 대부분의 교재나 책을 전자책으로 보고 있음을 알았다. 그만큼 시대가 변한 것이다. 불교도 그런 것 아닐까? 책갈피가 필요 없는 학생들에게 책갈피를 사용하라고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사회
오늘 논의해 볼 주제인 미디어 혁명에 대해 먼저 논의를 시작해보겠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다’, ‘미디어 빅뱅이다’, 혹은 ‘미디어 융합이다’ 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신문, 잡지, 방송과 같은 올드미디어들의 부침이 심한 것 같습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재민
몇 해 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창 던지기 금메달을 땄던 케냐의 줄리우스 예고의 예를 들어볼까 한다. 케냐를 비롯해서 아프리카 대 부분의 나라의 육상대회는 트랙종목 경기만 할 뿐 필드 종목(투포환, 창던지기 등)은 아예 없다고 한다. 당연히 코치도 없었다. 해외 유망주 연수에 선발되어 핀란드에서 잠깐 배운 게 전부라고 한다. 그런데 이 선수가 코치로 삼은 게 바로 유튜브였다는 것이다. 유튜브의 창던지기 영상을 찾아보며 독학 을 해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유튜브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또 한 가지이제 대중들이 네이버 같은 국내 검색엔진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얼마전 딸이 전자 피아노 연주를 배우고 싶다고 해 네이버를 검색했더니 전자피아노를 판매하는 사이트만 주욱 나오더라. 결국 구글과 유튜브를 통해 전자피아노 연 주를 가르쳐주는 영상을 찾아 활용할 수 있었다. 검색엔진과 인터넷에서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 나고 있다. 명상이든 불교 교리든 법문이든 유튜브에서 승부가 나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불교가 준비가 되어 있나를 생각해봐야 한다. 예전에 서재영 박사가 운영하던 홈페이지에 가끔 보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그 콘텐츠가 유튜브에 없다면 이제 활용도가 많이 떨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유병탁
유튜브의 변화는 정말 드라마틱하다. 사람들의 모든 눈과 귀는 지금 유튜브에 쏠려있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사람, 좋은 상품을 찾는 사람,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 등등 무엇을 원하 든 원하는 모든 것은 유튜브에 있다고 보면 된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면 당연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유튜브에서 광고를 하고 프로모션을 한다. 그래야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상업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상황이 이렇다면 불교도 유튜브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 40대 이하는 무얼 하든 이제는 유튜브를 통해서 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잡지나 신문도 이런 면에서 굉장히 취약하다. 독자들이 이미 유튜브에서 헤엄치고 있는 데 우리 독자들은 어디 있나 고민하면 뭐하나? 시장과 유리된 채 고립된 미디어들이 안타깝더라.
서재영
보통 불교하면 골동품같이 고색창연한 이미지로 그리는 경향이 있다. 불교를 상상하면 팔만대장경판이나 삼보사찰, 전통사찰, 불상 이런 것을 떠올린다. 불교미디어들이 앞장서서 그런 이 미지를 만들어 내는데 기여한 측면도 있다. 현대화에 실패했다고나 할까. 과거의 이미지만을 우려냈지 새로운 이미지나 상징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전법의 측면에서 보면 언제 어디서 나 불법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불자의 사명이므로 불교는 유비쿼터스적 특징을 가진 종교인데, 현실적으로는 그런 맥락을 살리지 못했다고 본다. 낡은 이미지 속에 불교를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
최근 변화의 흐름을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요약해보면 ‘디지털 퍼스트’ ‘미디어 컨버전스’ ‘모바일’ ‘데이터저널리즘’ ‘유튜브의 부상’ 등이 떠오 르는데요. 어떤 것을 주목해봐야 할까요?
윤호우
저의 경우 불교TV에 근무하다, 2002 년부터 지금까지 신문, 시사주간지에 근무하고 있다. 10여 년 넘게 계속 디지털 퍼스트를 사내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만큼 디지털 퍼스트가 힘들다는 이야기다. 뉴미디어라는 섬과 올드미디어라는 섬 이 언론사에 존재한다. 올드미디어는 수익이 나오는데 비전은 없고, 뉴미디어는 비전은 있지만, 수익이 없는 섬이다. 지금 현재의 매체들의 고민이 그런 것이다. 지금까지 올드미디어는 계속 선발대 를 뉴미디어섬으로 보내 사업을 하는데, 잘 안되 고 있는 게 고민이다.
정재민
신문이나 잡지의 구독률이나 열독률은 엄청나게 감소하고 있다. 문제는 구독률과 열독률 급감에도 신문이나 잡지의 수익은 크게 감소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즉 한국 사회에서 언론이나 미디어는 시장 기능이 작동한다기보다 보험적 기 능이 작동하는 시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신문, 잡지 등의 미디어는 안주하 고 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언론은 콘텐츠로서의 영향력이나 잘못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영향력을 통해 시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산업이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은 정치적 영향력을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영향력이 사라지고 있음에도 시장에서는 그대로 존재한다. 무언가 잘못된 생태계다.올드미디어는 기본적으로 고정비용이 매우 큰 산업이다. 신문이나 방송, 잡지를 생각해보자. 신문을 1만부를 찍든 100만부를 찍든 유지해야 할 기자와 취재인력은 거의 비슷하다. 방송도 그렇다. 공중파라는 방송이 유지해야 할 장비와 인력의 고정비용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이런 구조가 유지되고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광고와 시장이 존재할 때는 문제 될 게 없었다. 하지만, 그런 고정 비용 부담을 가지지 않는 콘텐츠와 플랫폼이 나타 나면서 조건이 달라졌다. 신문 발행 부수 10만 부 내면서 수백 명의 취재인력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 능한 구조가 된 것이다. 미국의 경우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뉴스위크가 이미 종이잡지 인쇄를 중단했고, 워싱톤 포스트나 LA타임즈도 팔려나갔다. 파산 신청을 하는 종이신문도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망하는 신문이 없다. 시장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인데,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선발대만 뉴미디어로 보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거다.
유병탁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미 올드미디어는 잊혀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신입직원들이 들어와서 교육을 하다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하 게 되는데 신문사 이름을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즉 경향일보, 한겨레일보 이런 식으로 실수를 곧잘 한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이름은 기억하는데 평판이 매우 안 좋다. 기성언론의 이미지는 살아있지만, 실제 신문을 보지 않기 때문에 잊 혀지고 있는 중이라고 본다. 또 하나 특징 중 하나는 세대별로 이용 플랫폼이 갈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튜브는 영상시청 플랫폼으로 세대를 불문하 고 중심축으로 남아있지만, 10대가 이용하는 플랫 폼과 20-30대, 혹은 40-50대가 이용하는 플랫폼 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아까 윤호우 편집장이 전위대를 보내 뉴미디어라는 섬에 적응하는 것이 과제라고 하셨는데, 이미 생태계가 뿌리를 내려서 적 응이 쉽지 않을 거라고 본다. 또 한 가지 불교계의 경우 이런 생태계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것 같다. 콘텐츠도 없고, 존재감도 없다.
정재민
불교계 미디어뿐만 아니라 일반의 신문 잡지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미디어를 꿈꾸고 싶다면 누가 독자이고 누가 시청자인지 알 고 싶다는 욕망을 가져야 한다. 불광이든 불교방 송이든 불교신문이든 누가 독자인지 과연 알고 있 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독자들의 연령, 취향, 그들이 기사나 콘텐츠에 보이는 반응 등에 대해 언론 미디어는 과연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고 있느냐의 문제다. 실제로 살펴보면 언론미디어들이 독자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독자들이 원하는 걸 잘 모른다는 거다. 독자들이 무엇을 원 하는지 알고 싶어 개발자들을 뽑지만 그들은 얼마 못 가 퇴사한다. 비싼 몸값을 가진 개발자들을 신문이나 언론사에 보냈더니 전기기사 취급하더라는 거다. 매일같이 ‘다 고쳤냐?’ ‘언제 다 되냐’는 식 의 의미 없는 질문을 주고받다 보면 그 개발자들이 거기 있어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한다는 거다. 그 만큼 언론미디어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디어들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보여주는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다. 뉴욕타임즈가 2005년 자신들이 만든 기사를 엄선해 유료화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콘텐츠만을 추려 유료화 서비스인 ‘타임즈 셀렉트’라는 걸 만들었다. 결과가 어떻게 됐을 것 같나? 대실패였다. 왜? 자기들은 유료화될 만한 의미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 했지만, 독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유병탁
정재민 교수 말씀처럼 독자들에 대한 파악은 매우 중요하다. 유튜브처럼 구독자 중심의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미디어 환경에서는 독자들 을 콘트롤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 회사가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중에 ‘맛있는 녀석들’ 이란 채널이 있다. 일종의 먹방 콘텐츠인데, 구독 자만 40만 명이 넘는다. 구독자 수가 많다 보니 회 사 내에서도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홍보하고 싶거나 광고가 필요한 콘텐츠를 슬쩍 끼워 넣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구독자 수가 실시간으로 줄 어드는 현상이 발생한다. 구독자들은 ‘내가 왜 당 신들 홍보를 봐야 하는데, 필요 없어!’ 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제 디지털 콘텐츠에 있어 DB나 아카이브는 기본이 된 지 오래다. 그보다는 독자 들에 대한 세밀한 니즈Needs나 취향 분석이 중요하다. 불교계는 자꾸 DB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같더라. 나는 기본적으로 페이스북 신봉자였다. 근데, 페이스북은 사용자나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들에게 수익을 나눠주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서재영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되면서 장단점이 많이 노출되고 있다. 기존의 종이신문 위주에서 인터넷 언론이 생겨나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의 무력화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사실처럼 폭로되는 것이 오 늘 날 종교가 직면한 미디어 환경이다. 물론 이런 미디어 환경이 가져오는 장점도 있다. 전통적 미디어 환경에서 종교는 은폐된 공간 속에 있었고, 거기서 종교적 신성성이 이미지화 되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것들이 해체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가톨릭의 경우 사제들의 아동 성추문이 여과 없이 폭로되면서 신뢰성이 추락했다. 한국불교의 종단 갈등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뉴스를 생산하는 뉴미 디어 환경에서 더 이상 은폐된 공간이란 없다. 자연히 신비감 속에 만들진 신성성은 해체되고 있다. 현재의 미디어 환경은 은폐된 공간에서 만들어진 신성성을 해체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제 비밀의 방은 어디에도 없다. 종교인들은 솔직해져야 하고,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부응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해야 한다.
정재민
유튜브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알고리즘이다. 전 세계 유니콘(기업가치가 1조 원 이상 되는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 기업 중 1위가 우버였다. 그런데 1 달 전 바뀌었다. 틱톡이라는 앱을 만든 중국계 기업 바이트댄스라는 곳이다. 기업가치가 87조 원에 달한다. 맞춤형 알고리즘 탓에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을 가지고 있는 앱을 개발해 기업가치가 수직 상승했다. 예전에는 플랫폼이 대세였다. 플랫폼이 뭔가? 기차에 내리고 타는 곳이 플랫폼이지 않았나? 사람들이 많이 오르내리면 장터도 서고 돈도 벌 수 있는 곳이 플랫폼이었다. 과거 가장 중요한 플랫폼이 신문이나 잡지였는데 이제 그 플랫폼이 구글과 유튜브로 바뀐 거다. 한 가지 재미있는 문제제기를 해보고자 한다. 제가 직접 썼던 논문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기사 작성 알고리즘을 가진 로봇이 쓴 스포츠 기사와 인간 기자가 쓴 기사를 놓고 일반인들과 기자 그 룹으로 나누어 평가를 하게 했다. 그랬더니 로봇이 쓴 기사나 인간이 쓴 기사나 비슷하다는 평가 가 나왔다. 일반 그룹이나 기자 그룹 모두 같았다. 로봇의 알고리즘이 그만큼 발전했다는 의미다. 두 번째로는 로봇이 쓴 것과 기자가 쓴 것을 누가 쓴 것인지를 공개하고 평가를 해봤다. 그랬더니 로봇이 쓴 기사의 신뢰도가 70%가 넘게 나오고 인간 기자가 쓴 기사의 신뢰도가 30%도 안되게 나왔 다. 심지어는 기자 그룹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기자들 스스로도 기자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반대로도 해봤다. 로봇이 쓴 기사를 기자가 썼다고 속이고, 기자가 쓴 기사를 로봇이 썼다고 속여서 어느 기사가 신뢰도가 높으냐고 물었다. 그 랬더니 실제로는 기자가 썼지만, 로봇 기자가 썼다고 말해준 기사의 신뢰도가 두 배 정도 높았다.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언론이나 미디어가 얼마나 독자들에게 신뢰를 잃고 있는 보여주는 조사다. 얼마 전에는 LA타임즈에서 지진 발생 50초 만에 기사가 나왔는데 로봇이 쓴 기사였다. 사람 이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금융, 증권, 날씨, 스포츠 기사의 경우 많은 로봇 기자가 기사를 쓰고 있다. 이런 상황은 언론이나 미디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던져주는 연구들이다. 신뢰도 받지 못하고, 기사 작성 속도에서도 뒤처지는 인간 기자들이 무얼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결과다. 우리 미디어가 어떻게 독자들의 신뢰 자산을 회복할 지 부 터 시작해야 함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사회
국가별 언론이나 기자 신뢰도는 어떤가요?
정재민
국가별 뉴스 신뢰도에서 한국은 세계 36개국중 꼴지였다. 뉴스 신뢰도가 가장 높은 나라로는 핀란드였으며 브라질과 포르투갈 등이 뒤 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리스에 이어 가장 낮은 신뢰도를 나타냈다. 과거 지사적 언론인들이 자기 역할을 해온 적이 있었고, 최근 촛불 혁명도 손석희라는 언론인과 JTBC라는 언론사가 중요한 역 할을 하지 않았느냐? 우리 언론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신뢰의 상실이다. 언론사가 독자로부터 외면받으면 어떤 사업을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 고 봐야 한다. 불교미디어도 마찬가지고, 불광의 경우도 미디어 환경의 위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도 바로 그런 브랜드 가치나 신뢰구 축이라고 본다.
서재영
유튜브라는 매체는 전통적 강자의 부활 을 촉진한다고 본다. 전통적으로 불교는 법회라는 공간에서 설법을 통해 전법했다. 이 때 존경받는 사람을 부루나 존자처럼 설법을 잘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활자시대가 되면서 글 잘 쓰는 스님들이 주 목받았다. 글이란 누군가 미려하게 다듬어 줄 수도 있고, 대필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유튜브는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 법문 잘하고, 즉흥적이고 감성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상할 수 있는 환경이다. 아쉬운 것은 유튜브에서 스타 스님이 탄생 하지 않는다는 것은 설법과 법문을 잘하는 전통적 강자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윤호우
또 한편으로는 불교미디어의 경우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불교가 앞서는 것인지, 저널리즘이 앞서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 한 논의가 없다. 한쪽에서 사실과 진실을 이야기 하면 한쪽에서는 전법과 포교를 이야기한다. 불교 미디어 스스로 어디까지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양상은 매우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미디어 환경의 변화, 기술적 특징 이런 것이 주였지만, 실제로 신문이나 잡지 같은 경우는 저널리즘 측면에서의 논의도 중요하다.
정재민
종교 미디어의 기본적 존재의의는 사상과 이념의 확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불광 잡지 최 근호 보면서 든 느낌인데, 왜 이렇게 좋은 콘텐츠 를 유튜브나 영상으로 제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 들었다. 예를 들어 통도사 공양간 스님들의 이야기나 누룽지 사진은 아주 재미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콘텐츠를 어떤 방식으로 재가공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가 그런 문제의식이 약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언제 까지 종이잡지, 종이신문으로 유효할까 하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미디어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방송이나 콘텐츠 업계도 비슷하다.
유병탁
방송이나 콘텐츠 업계도 회의를 하다 보면 대표가 디지털에 대해 강조하고, 결정하면 빠른 속도로 이뤄질 것 같은데, 실제 움직이는 속 도를 보면 그렇지가 않다. 방송이나 콘텐츠 업계 도 그런데, 신문이나 잡지가 빠르게 움직일까? 나는 비관적이다. 흔히 원소스멀티유즈라는 이야기들 많이 하지 않았나? 회사에서도 쉽게 그런 이야 기를 한다. “이거 이거는 취재해서 기사로 쓰고, 이거는 영상으로 찍어서 올리면 되는 거 아냐? 뭐가 그렇게 어려워? 빨리 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럼 그런 지시가 실제로 실행될까? 나는 안된다 고 본다. 기존의 편집국과 같은 그런 구조의 디지털 팀이 또 하나 생기지 않는 이상 그런 업무가 기존 부서에서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건 일종의 DNA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재민
구글이나 유튜브는 이미 IT기업이 아니라, 미디어 기업이다. 그 가장 큰 근거는 광고수 입을 보면 알 수 있다. 구글은 자신들은 미디어가 아니라 공식적으로 주장하지만, 이는 정치적 수 사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벌어들이는 수입 의 대부분은 광고 수입인데, 그 수입은 어디서 온 것인가? 기존의 미디어들이 벌어들이던 것이다. 즉 기존 미디어의 광고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디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 또 하나 이제 미디어들이 벌어들일 광고 수입도 구글 이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뺏어갈 것이라 는 점을 알아야 한다.
사회
한국적인 상황에서 올드미디어들이 독자들 을 대상으로 콘텐츠 유료화가 성공할 가능성이 있 을까요?
정재민
개별 언론사들의 콘텐츠 유료화 성공 가능성은 별 의미가 없다. 이미 올드미디어에 대한 개별적 특성은 대중적으로 기억되지 않고 있다. 실례로 미국의 경우에는 신문이나 잡지 등 공공성이 있는 올드미디어는 협회나 기금을 통해 발간을 지 원해야 한다는 의견마저 나오고 있다. 국내 언론들도 유료화 정책을 여러 번 시도했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매일경제도 시도한 사례들은 있지만, 모두 실패했다. 중요한 것은 독자에 대한 분석 없이 온라인 콘텐츠 유료화는 의미 없다는 것이다. 우리 독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해야 하고, 그 분석을 통해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를 알아야 어떤 콘텐츠를 만들 지와 어떻게 유료화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서재영
최근 월간 불광의 경우를 보면서 든 느 낌은 제작시스템을 바꾸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실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제작시스템이라면 기획을 하고, 원고를 받고, 취재를 하고 사진을 찍고 편집하는 시스템일 것 같다. 그런 방식보다 오히려 유튜브를 우선에 두고, 유튜브로 먼저 촬영하고 이를 녹취해 텍스트로 푸는 방식으로 변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통도사 공양간 누룽지도 그렇고, 이런저런 기획을 순서를 바꾸어 진행해보면 더 신선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도 든다.
유병탁
기획순서를 바꿔 해보는 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영상 콘텐츠 제작의 비용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잡지는 판매가 되면 돈이 생기기 때문에 영상을 만드는 쪽의 비용 문제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있을 것이다. 지상파도 그런 실험이 계속 되고 있는데, 불가능에 가깝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SBS뉴스와 버티컬 브랜드인 스브스뉴스가 제작 방식이나 조직 운영이 완전히 다르다는 거다.즉 두 조직이 다 필요하다는 거다. 흔히 원 소스 멀티 유즈 One Source Multi Use라는 걸 기계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이 원칙은 이미 폐기될 때가 됐다. 기계적인 원 소스 멀티 유즈는 현장에서 용도폐기 됐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사회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맞는 인력을 어떻게 육성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까?
윤호우
현장에서 보면 신문방송학과 졸업했다 해도 신문 방송 현장실무에서는 활용할 기술이 별로 없다. 모두 다시 가르쳐야 한다. 즉 기초적 교양 이라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즉 창의적 글쓰기나 교양 글쓰기라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낫다.
유병탁
학교 방송국에서 인턴으로 오는 친구들 일 시켜보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왜냐하면 20년 전에 방송하던 식의 과거 기술을 배우고 이상한 쪼를 배우고 와서 하는데, 너무 이상하다.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편견 없이 배우고 활용을 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거다.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 되어야 하고, 시장 친화적인 교육으로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해야 한다.
사회
월간 불광의 경우 불교계 잡지 중에는 유료 모델로 운영되고 있고, 인터넷과 유튜브 환경에도 적응하면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월간 불광이 좀 더 신경 써야 할 점이 있다면 한 말씀 씩 부탁드립니다.
정재민
독자 분석이 가장 중요하다. 조직도 혁신적 디지털 조직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유병탁
일반적으로 유튜브가 영상매체라고 생 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예를 들어 예불, 염불, 사찰의 계곡 물소리 등 다양한 소 리도 콘텐츠가 될 수도 있다. 불교와 사찰과 관련한 소리콘텐츠는 불교 내부의 생각과 전혀 다른 수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불교미디어의 근원적 목적을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 다. 특히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접근해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있을 수 있다.
서재영
유튜브의 중요성을 볼 때 영상이나 디지털 관련 자회사 형태나 별도 조직으로 운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워낙 출판, 잡지, 디지털의 DNA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또 하나는 너무 종합적으로 생각지 말고, 콘텐츠의 범위를 좁힐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부 종단에 있는 사람들이 관심 가질 내용 말고, 일반 불교 대중이 관심을 가질 만한 연성의 콘텐츠나 신앙적 콘텐츠가 중요하다.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콘텐츠의 신뢰성을 높이고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사회
귀한 시간 내셔서 감사합니다.
미디어 혁명 시대의 불교미디어 무엇을 할 것인가 |
미디어 환경이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경계와 영역은 허물어진 지 오래다. 신문과 방송, 잡지 등의 전통적 미디어의 위축은 갈수록 심화된다. 디지털미디 어와 영상미디어의 발전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플랫폼이 콘텐츠를 압 도 하는 것도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유튜브는 기존 검색포털을 따돌리고 콘텐 츠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이번 기획은 전법과 신행의 가장 중요한 토대 중 하나인 불교미디어의 갈 길을 묻는다. 미디어 혁명의 시대, 불교미디어는 어디로 갈 것인가? 01 특별좌담: 미디어 혁명과 불교 / 서재영, 유병탁, 윤호우, 정재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