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어제의 적이
수십 년 만에 만나 나눈 나흘간의 진솔한 대화
1997년 6월 20일부터 23일까지 나흘 동안 베트남 하노이의 메트로폴 호텔에서는 아주 특별한 회의가 열린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20여 년이 지난 시점, 전쟁 당시 미국과 베트남의 최고 책임자들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노이 대화’로 알려진 열띤 토론을 벌인다.
20세기 최대의 비극 중 하나인 베트남 전쟁을 사전에 피할 길은 없었는지, 이미 시작되었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끝낼 수는 없었는지 찾아 나선 그들은, 점점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비극을 초래했다는 점을 깨닫고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끊임없는 대화가(특히 최고 지도자들의!) 필요함을 확인한다.
‘하노이 대화’의 현장과 그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이 책 <적과의 대화>(원더박스)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각국 간의 대화가 난항에 빠질 때마다 반드시 살펴봐야 할 필독서는 물론이고, 전쟁이 아닌 대화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종전 20여 년, 베트남 전쟁의 양측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다
1973년 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베트남 전쟁의 종결 및 평화 회복에 관한 협정’(파리 협정)이 조인된다. 미국은 이 협정에 따라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2년 후인 1975년 4월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은 북베트남군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에 의해 함락된다. 그리고 1976년 통일 베트남, 즉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된다.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난 1997년 6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국방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S. 맥나마라를 비롯하여 관료, 군인, 학자 등으로 구성된 13인의 참가단이 베트남 하노이를 찾는다. 이른바 ‘하노이 대화’를 위해서다. 미국 참가단에 맞선 베트남 참가단 역시 응우옌꼬탁 전 외무장관 중심의 13인으로 구성되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군인과 관료 그리고 학자로 구성된 양측 대표단은 3박 4일 동안 베트남 전쟁을 둘러싼 뜨거운 토론을 벌인다.
‘하노이 대화’와 그 전후 맥락을 취재한 NHK 다큐멘터리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 - 베트남 전쟁‧적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을 통해 그 생생한 현장을 느껴보자.
무지와 오해가 낳은 비극
‘하노이 대화’는 ‘미스트 오퍼튜니티?Missed Opportunities?(기회를 놓쳤는가?)’로 명명된다. 전쟁을 피하거나 조기에 종결시킬 기회를 혹시 놓친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에서다. 나흘간의 토론을 통해 그들은 ‘놓쳐 버린 기회’를 되짚는다. 만약 트루먼 대통령이 1945년 9월에 호찌민 주석이 보낸 편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로 만들려는 프랑스에 반대했더라면? 1954년 제네바 회의에 따라 결정된 1956년 통일선거를 미국과 남베트남이 거부하지 않았다면? 1960년대 초 부상했던 ‘남베트남 중립화 구상’이 진지하게 논의되었다면? 1960년대 후반에 진행되었던 ‘비밀 평화 협상’이 무산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전쟁 당시 미국 국무부의 베트남 전문가 역할을 한 체스터 쿠퍼는 1945년 호찌민의 편지에 대해 “당시 미 국무부에 호찌민 주석은 물론이거니와 베트남이라는 국가를 알고 있는 사람조차 없었을 것”(86쪽)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아시아 상황에 대해 무지했고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이 제네바 협정 이행 사항인 ‘1956년 통일선거’를 거부한 것은 선거를 진행할 경우 호찌민이 이끄는 베트남 공산당이 정권을 잡을 것이 확실하고, 그렇게 된다면 중국과 소련의 영향력이 인도차이나 반도에까지 확산될 것이란 점을 우려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부패와 폭정으로 기울어 가는 남베트남 정부를 지키기 급급하였고 결국에 파병까지 하기에 이른 것도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는 중국과 오랜 갈등을 겪은 베트남의 역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맥나마라는 대화 마지막 날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우리는 베트남이 소련과 중국의 앞잡이가 되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 한, 베트남의 통일과 독립에 반대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나는 베트남이 그 역사를 봐서도 소련이나 중국에 이용당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제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면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다.”
‘비밀 평화 협상’의 무산 원인에 대해서 베트남의 전직 외교 관료들은 입을 모아 ‘북폭’을 꼽는다. “한도 끝도 없이 폭탄을 퍼부어 대면서 평화안을 믿으라는 것은 도무지 무리가 아니겠습니까?”(156쪽) 맥나마라는 그렇지 않다고, ‘북폭 중지’를 거듭 제안했다고 반론한다. 오히려 북베트남 정부가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아 북폭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한다. 어떻게 보면 ‘북폭 중지’가 북베트남으로서는 선결 조건이고, 미국에게는 협상 카드였던 셈이다.
베트남에서는 미국을 프랑스에 이은 또 다른 침략 외세로 인식했다. 미국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을 중국과 소련의 앞잡이로 보았다. 서로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남베트남 중립화 구상’도 ‘비밀 평화 협상’도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노이 대화 마지막 날, 미국 측 체스터 쿠퍼는 베트남 대표단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여러분은 우리의 평화 제안을 진지한 것이었다고 인정하실 수 있습니까? 우리가 진심으로 협상을 통한 해결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발언하면, 당신들은 그것을 믿어 주실 건가요?”
이에 대한 베트남 측의 답은 다음과 같다. “체스터 쿠퍼 씨! 지금이라면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 당시는 도무지 무리였습니다.”
하노이 대화의 교훈
나흘간의 열띤 논쟁 후, 로버트 맥나마라는 이 대화를 통해 아래와 같은 평화 협상의 최저 조건을 확인했다고 밝힌다.
북베트남 측: ① 미국의 폭격 중지와 미군 철수의 확약. ②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연립 정권 참가. ③ 베트남 통일을 향한 절차와 조건의 확립.
미국 측: ① 미국인 포로 석방. ② 비공산주의 세력의 연립 정권 참가. ③ 통일 베트남이 소련과 중국이 동남아시아에서 패권을 확대하는 데 앞잡이가 되어 행동하지 않겠다고 확약할 것.
이렇게 놓고 보면, 이는 분명 조정 가능한 범위에 있는 사항들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이런 최저 조건을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아무도 협상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다.
하노이 대화가 끝나고 1년 후, 취재진이 맥나마라를 찾아 하노이 대화의 교훈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하노이 대화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베트남 전쟁은 미국과 베트남 쌍방의 지도자가 보다 현명하게 행동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대화의 교훈을 바르게 배운다면, 미래에 이와 같은 전쟁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교훈을 두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우선 적을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적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비록 상대가 적일지라도 최고 지도자끼리의 대화, 그렇습니다,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도 게을리 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209쪽)
힘의 대결이 아닌 대화의 힘으로
‘하노이 대화’가 보여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상대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벗고 상대의 의지와 목표 등을 정확히 이해하면, 그를 통해 성공적인 협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 최고 지도자끼리의 지속적인 대화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는 비단 베트남 전쟁에 대한 평가를 넘어, 오늘날 한반도 평화를 위한 프로세스에도 적용 가능하다. 남한과 북한, 북한과 미국, 미국과 중국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접근법이다.
베트남에 개입한 미국의 경우 본인들의 입장에서는 소련과 중국의 손길로부터 인도차이나를 지켜줄 은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정작 베트남인들에게는 프랑스를 몰아냈더니 그 자리에 들어온 외세에 지나지 않았다. 베트남의 경우 본인들은 외세로부터의 독립을 최고 가치로 내세웠으나 미국에는 중국과 소련의 앞잡이로 인식되었다. 자신의 역사에만 함몰되지 말고, 상대의 시각에서 자국이 어떻게 비칠지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로 대화에 임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북폭과 비밀 협상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힘의 과시를 협상의 무기로 쓸 때의 위험성도 인지해야 한다. 특히 어떤 행위의 시그널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용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미국은 북폭이 북베트남이 대화에 임할 명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베트남으로서는 오히려 굴복하는 모습으로 비칠까 대화에 임할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결국에는 지속적인 대화로 오해와 편견, 무지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베평화재단 이사장인 강우일 주교(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는 ‘추천의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상대를 이해하고,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교훈은 지금 우리에게 더 없이 절실합니다. 다행히도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새로운 대화의 길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그 대화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쌓여 온 오해와 불신을 이해와 신뢰로 바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숱한 도전 속에서도 대화의 힘을 믿고 평화의 길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그 평화로 가는 길에 이 책이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