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풍류의 도는 무엇인가
저자는 풍류, 풍류인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교의 본질은 이욕을 버리고 인간 본성을 살리는 것, 불교의 본질은 아집에서 벗어나 불심을 찾는 것, 도교의 본질은 인간의 허위를 버리고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풍류는 이와 같은 삼교를 접화군생(接化群生)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사고라 할 수 있으며, 풍류인은 이에 따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저자는 한국의 대표적인 풍류 인물 20인을 선정하는 데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아무리 풍류 정신으로 풍류적인 삶을 살았다 해도 대의와 정도를 벗어난 인물은 배제했다. ‘중국 정신’이 깊게 배어 있거나 입신출세와 보신주의적 처신, 친일 행적이나 군사독재에 협력한 인물 역시 배제했다.
이 책에서는 자유와 철학과 시문과 신념을 갖고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로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걸출한 인물 20인을 골랐다. 퇴계 이황처럼 조선시대 최고의 관직에 올랐으면서도 학문에서의 주체성이 분명하고 소박한 일상생활을 영위한 인물부터,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에 의를 실천한 김시습, 서얼 출신이라는 제도의 얽매임 때문에 스스로 일탈의 삶을 택한 시인 이달, 자신이 창조해낸 소설 속 주인공 홍길동 못지않게 쾌남아로서 일생을 살아간 허균, 권세가의 그림 요구에 자기의 눈을 찔러 외눈박이 화가가 된 칠칠이 최북, 일제 치하 독립운동의 간난신고 속에서도 풍류를 잊지 않았던 이회영, 법의(法衣) 속에 성의(聖衣) 입은 사도법관으로 법조계의 전설적인 인물 김홍섭, 목사이기 이전에 문인이었고 견결한 통일운동가이기 이전에 멋을 아는 인물이었던 문익환, 반독재 투쟁의 와중에도 생명사상의 새 길을 모색한 장일순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고금을 넘나드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꿈꾸는 족속,
현실에선 패배했지만 불멸의 이름을 얻었다
“이들은 유별난 꿈과 정열의 소유자이고, 출중한 능력을 가진 자이며,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낭만과 정서를 간직한 사람이다. 세속의 금줄(禁制)을 벗어던진 탈선자이고, 고린내 나는 상투 속의 권위에 단발령을 내리는 자이고, 사대주의적 학문에 찌든 먹통들을 깨부수는 의병이고, 곡필과 궤변으로 이름을 날리는 논객을 무찌르는 촌철(寸鐵)의 게릴라 대장이다.”
이들은 주로 중앙에서 변방으로, 주류에서 사이드로, 그러나 역사와 시대와 미래를 넘나드는 초인으로 살다 간 자유로운 영혼들이다. 이들의 불꽃 같은 삶과 좌절의 잿더미에 남은 불씨는 우리에게 여유와 온기를 안겨준다.
단재 신채호는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가치가 풍류 정신이라고 개탄했다고 한다. 현대인에게 풍류라면 마치 멋 부리고 술 잘 마시고 돈 잘 쓰고 바람기 있는 사람으로 인식될 만큼 그 본질과 정신이 함께 훼손되었다. 가족도 돌보지 않은 채 음주나 즐기며 주유천하를 일삼는 사람이 풍류객의 본령은 아니다. 풍류객이란, 직무에 충실하면서도 세속적 탐욕에 빠지지 않고 정신적으로 자유로우며 화이부동하는 자세, 나름의 신념과 철학을 갖고 세상의 악과 싸우며 사는 사람이다. 저자는 말한다.
“『노자(老子)』에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란 말이 있다. 흐르는 물은 결코 선두를 다투지 않는다는 것, 치열한 경쟁 체제와 약육강식 구조 속에서 조금 느리더라도 인간 본연의 삶을 찾고 정도를 걸으며 당당하게 사는 것, 이것이 현대인의 풍류 정신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 나오는 풍류인물 20인
새벽을 연 무애인(無碍人) 원효 / 불의의 시대에 의를 지킨 김시습 / 절개와 의기를 살린 문인 남효온
송도삼절의 고고한 선비 서경덕 / 태백북두와 같은 도학자 퇴계 이황 / 경(敬)과 의(義)의 선비 남명 조식
흙담집 민중의 벗 이지함 / 조선의 삼당시인(三唐詩人) 이달 / 호방하고 주체성이 강한 명문장가 임제
혁명을 꿈꾼 쾌남아 허균 / 유랑벽이 심한 괴짜 화가 칠칠이 최북 / 태양을 거부한 방랑 시인 김삿갓
지행일치의 독립운동가 이회영 / 파계가 두렵지 않은 진짜 승려 한용운 /
화초 ‧ 시조 ‧ 강호와 함께한 이병기 / 조선의 얼을 지킨 선비 정인보 /
저항과 씨알 정신의 야인(野人) 함석헌 / 법의(法衣) 속에 성의(聖衣) 입은 사도법관 김홍섭
벽을 넘어선 자유로운 영혼 문익환 / 생명사상의 새 길을 연 장일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