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7월 1일이다. 평생 천착해온 죽음과 그는 77년 만에 겨우 상봉했을 것이다. 부고는 그의 부인이 멀리 캐나다에서 한국 문단에 알려 왔다. 죽기 전에, “장례식도 하지 말라, 나를 위해 울지도 슬퍼하지도 말라, 차라리 축하나 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소식을 들은 한 시인은 “죽음을 감축드립니다.”라고, 살아남은 자로선 뱉기 힘든 말로 영전에 송사했다.
박상륭 작가의 작품이 불교나 선禪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하면,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많이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길은 너무 많고 게다가 서로 뒤섞여 있어서, 그가 딛고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딱 찍어서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그렇지만서도, 그가 살아생전에 죽음의 문제를 천착하며 딛고 있었던 교두보 가운데 하나가 선이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대표작 『죽음의 한 연구』에서 유리를 떠도는 주인공이 선문禪門의 6조 혜능에 모티브를 두었다는 것은 다들 아는 얘기다. 또 무려 4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 『칠조어론七祖語論』 역시 책 제목부터 선문 안쪽의 냄새를 풀풀 풍긴다. 문학계까지는 잘 모르겠고, 불교계에서 그의 작품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못했던 것은 두고두고 아픈 패착으로 남을 것이다.
최인호의 『길 없는 길』 이나 김성동의 『만다라』 속으로 뻗어있는 길과는 또 다른 길이 박상륭의 작품 속에 있다. 앞의 두 작가가 어떤 식으로든 한국 불교계에 자양분이 되었던 데 비해서, 박상륭은 눈길조차 받지 못했다. “바위에다 머리통을 찍어”(『소설법』, 현대문학, 2005, 154쪽) 가며 그가 뚫어 놓은 길이 선문의 깊숙한 곳을 향해 있음을, 우리는 미처 몰랐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라면 한계고 수준이라면 수준이다. 도리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이 그렇다.
모든 죽음은 어쨌거나 다 갑작스럽다. 오랜 병마에 시달려왔던 이의 죽음이나 멀쩡했던 사람의 죽음이나 갑작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그 갑작스러움이 남은 사람의 머릿속을 멍하게 한다. 좀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맹렬히 질주하던 삶이 죽음 앞에서, 한순간 멈칫한다. 그리고 지나온 길에 대해 생각하고, ‘나’에 대해 생각하고, 아득하고 막막한 다가올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죽음은 화두가 된다. 이 과정을 제대로 겪어낸 사람에게 죽음은 더 이상 갑작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제 죽음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선문에서 죽음을 다루는 전형이 방 거사의 임종 이야기에서 보인다. 방온(龐蘊, ?~808)은 중국 당나라 때 인물이다. 유마 거사와 더불어 동아시아 불교의 특징과 면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재가 수행자다. 내로라하는 이름 높은 선사들도 그를 자주 언급했다. 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 『방거사어록龐居士語錄』인데, 그 끝머리에 임종을 맞이하는 방 거사의 모습이 나온다.
방 거사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고 딸 영조靈照에게 말했다.
- 해가 어디쯤 있는지 보고 한낮이 되거든 알려다오.
영조가 이미 해는 중천에 떴고 게다가 일식까지 있다고 곧 대답했다.
이상하게 여긴 거사가 문밖으로 나가 하늘을 살폈다.
그런 틈에 영조는 얼른 거사가 있던 자리에 올라가 합장하고 앉은 채로 죽었다.
죽은 딸을 보고 거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 이년이 앞질러 갔구나!
거사는 자신의 죽음을 잠시 미뤘다.
영조가 세상을 떠난 지 7일째 되던 날에 지방의 관리가 병문안 차 들렀다.
거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모쪼록 세상의 지어진 것들은 다 공空하다 여기시고, 애초부터 없는 것에 연연하지 마소서.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은 이 세상에서 부디 편안히 잘 사시오.
말을 마친 거사는 그의 무릎을 베고 숨을 거두었다.
거사는 왜 굳이 정오에 임종을 맞이하려고 했을까. 딸 영조는 왜 아비에게 거짓말을 하고, 또 왜 갑자기 죽었을까. 거사는 또 왜 하필 지방 관리가 방문했을 때 세상을 떠났을까. 여기서 기껏 이런 궁금증이나 생긴다면, 이 이야기는 사람의 의식을 길어 올리지 못한 것이 되고 만다. 이런 것들은 모두 그냥 양념이려니 하고 지나쳐 버리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에서 보이는 죽음을 다루는 방식과 태도다. 여기서 등장하는 어떤 죽음도 갑작스럽지 않다. 영조의 갑작스러워 보이는 죽음조차도 거사는 전혀 갑작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년이 앞질러 갔구나!” 하는 말은, 무려 농담처럼 들린다. 거사의 죽음 역시 결말을 다 알고 있었던 얘기인지라 싱겁다.
죽음은 갑작스러운 일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 안에 그 사실을 감당할 만한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생사대사生死大事는 해결하거나 헤쳐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감당해 내야 하는 것임을 알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은 그것을 세월로 알고 본능으로 느낀다. 하지만 삶에 대한 집요함이 그것을 억누르는 게 아닌가 싶다. 생사대사가 갑작스럽게 느껴지지 않으려면 이 집요함에 맞설 수 있는 내 안의 힘이 필요하다. 선은 그 힘의 정체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나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죽음을 목격했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ck는 1958년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 화가다. 숨겨진 거장으로 알려진 그의 작품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전시되었다. 그의 회화사적 위치는 인상파의 끝자락 정도 되는 모양인데, 야수파 화가로 분류된다. 초기 작품은 강렬한 원색이 두드러져, 나처럼 회화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면 고흐나 고갱 혹은 세잔의 작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화가는 그런 기조를 오래 유지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만의 그림세계를 새로 구축해나갔다. 영향에서 벗어나기는 영향을 받는 것보다 곱절은 힘들었을 것이다. 그가 전성기에 남긴 대부분의 작품은 잿빛이다. 하늘도, 골목도, 집도, 사람도 모두 그렇다. 그저 진하거나 연한 정도로 서로 경계를 치고 있을 뿐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막막함이나 절망, 폐허, 뭐 이런 말들이 떠오른다.
그가 구사하는 색감과 풍경은 너무 무거워 보는 사람을 힘겹게 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져서 하마터면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지붕 위에 쌓인 눈을 그린 흰 물감은 금방이라도 흘러내려 툭 떨어질 것처럼 무지근했는데,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은 마치 자신이 살아온 시간이 거기에 퇴적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져, 보고 서 있는 동안 한편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물감이 경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겨우 알았다. 그의 그림은 유화는 왜 원화로 직접 봐야 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고도 납득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렬했다.
블라맹크는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유언을 남겼다. “…아직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그는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원한 것이 없었다. 인생은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으며, 내가 본 것을 그렸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화가의 유언에는 생명에 대한 부질없는 집요함이 없이, 지난 생애에 대한 경의만 짙게 배어 있었다.
화가의 유언은 전시회장 출구 쪽 벽에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전문이 인쇄되어 걸려 있었는데, 27년 만에 만난 내 오랜 중년의 벗은 그 앞에서 꽤 오래 머물러 있었다. 나는 몇 걸음 뒤에서 그의 낯선 등짝을 보고 서 있으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감당해 낸다는 것에 대해 잠깐 생각하다가, 그의 어깨선이 부풀어 보여서 서둘러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박재현
서울대학교 철학박사. 저술로 한국 근대불교의 타자들』, 깨달음의 신화』, 만해, 그날들』 등이 있고, 「한국불교의 간화선 전통과 정통성 형성에 관한 연구」 외에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부산 동명대학교 불교문화콘텐츠학과에서 겨우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