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한 마음을 씨앗으로 쉽고 값싼 기술을 개발
이상호 대표(36)는 서울대 공학박사를 취득한 후 삼성전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미국 연수를 갔다가 3D 프린팅에 눈을 뜨게 됐다. 프린터로 3차원 물체를 뽑아내는 IT·소재·가공 융합기술이었다. 유망하다고 확신해 부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2014년 여름 퇴직금을 받아 창업을 했다. 회사 이름은 ‘만들어’를 살짝 비튼 ‘만드로’, 영문명 Mand.ro로 정했다.
아이템을 찾느라 인터넷카페 활동을 하던 중 동갑내기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했다. 프레스에 두 팔이 절단되었는데 전자의수가 너무 비싸다는 것. 인터넷 공개도면을 참고하고 시중에 나와 있는 부품을 구입했다. 1년 반 만에 완성품을 제작할 수 있었다. 개발 과정을 주위에 알려서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을 모았다.
대구에서 중소기업에 다니던 50대 기술자가 딸 결혼식을 앞두고 감전 사고를 당했다. 십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오른팔을 절단해야 했다. 딸이 TV 방송국에 제보했고 유명 연예인들이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주었다. 방송을 본 어느 기업인이 이 대표에게 연락해서 전자의수를 만들어주도록 했다. 이후 기술자와 기업인은 의형제를 맺었고, 기술자는 산업재해 피해자들에게 상담 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만드로는 코이카 지원을 받아 시리아 난민 캠프에 전자의수를 보급하고 있다. 총 500개 분량으로 도면·소재와 보급형 3D 프린터를 제공해서 현지에서 조립한다. 활동가들이 전자의수 제작과 수리를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킨다. 인건비와 출장비를 실비 정산하므로 돈이 그다지 남는 사업은 아니다.
만드로 제품의 가격은 한 개 100만 원, 두 개 150만 원이다. 외국제는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가격을 낮게 책정한 것은 기술을 도구가 아닌 가치로 보기 때문이다. 국내 지체장애인은 100만 명 이상, 이 중 의수가 필요한 사람은 수만 명에 달한다. 생계가 힘들고 주위 편견이 심해 일부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이 대표는 직원 3명과 일하고 있다. 1명 더 뽑으면 정부 간섭과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이란다. 월급은 모두 200만 원으로 동일, 대신 회사가 잘 되면 팔 수 있는 스톡옵션을 나눠 가졌다. 이 대표가 원래 좋은 일 하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좌우명이 ‘남들에게 도움 되는 촉매 역할을 하자’정도. 이 대표는 손 없는 중생들에게 손 붙여주는 천수관음보살이다. 자비심을 갖고 기술의 신통력을 발휘한다.
기술은 어렵고 비싸다는 것이 통념이다. 기술을 고통 치유가 아닌 이익창출의 수단으로 보는 탓이다. 기술의 기본은 자연 자원을 활용하고 원리를 응용하는 것. 개인·기업이 덧붙이는 부가가치는 미미하며 그마저도 선배와 주변의 기여가 대부분이다. 소수의 기술 의인義人들이 쉽고 값싼 기술로 널리 이롭게 하고 있다. 이름 하여 적정適正기술, 혼탁한 세상을 맑히는 적정寂靜과 통한다.
이 시대 불교는 기술발전과 괴리되어 있고 관련 문제에 대해 해답을 주지 못한다. 체體는 기술까지 통섭하는데 상相이 구태이고 용用은 미숙하다. 불법은 쉽게 무상無償으로 깨달을 수 있는 진리이자 방편이다. 세속의 법인 기술도 당연히 쉽고 값싸야 하며 세상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무명에 갇혀 지극히 당연한 그것을 실천하지 못한다. 불법이 기술을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등불 역할을 해야 한다.
| 기술은 약독동시藥毒同時, 바르게 개발하고 이롭게 사용해야
기술은 약이면서 동시에 독이다. 산업혁명기에 파팽이 선박용 증기엔진을 개발하자 선원조합이 일자리가 없어질 거라며 반발했다. 한 과격한 조합원은 그를 살해해버렸다. 세이버리는 광산용 증기펌프를 개발하고서 광부들로부터 환영받고 돈도 벌었다. 같은 기술인데 이해관계에 따라 독과 약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증기기관이 널리 보급되었고 약으로 쓰이면서 독도 함께 퍼졌다.
부처님 당시 제바달다가 느슨한 계율을 문제 삼아 승단 주도권을 탈취하려 했다. 부처님은 “각자 좋을 대로 하라. 수행방식을 이유로 비구를 분열시키지 마라.”고 타이르셨다. 수행은 그 자체로 좋은 것, 잘못된 의도가 문제라는 뜻이다. 기술도 좋은 면이 많지만, 사람들이 잘못 사용해서 고통이 된다. 기술이 약이나 독이 되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기술이 일자리 없애기를 넘어 사람 자리까지 빼앗고 있다. 자동화가 공장노동자를 일터에서 내쫓았다면 정보통신기술(ICT)은 사무직과 일용직을 몰아내는 중이다. 이제 스마트폰이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시사잡지 「타임」이 최고 발명품으로 허그 셔츠를 선정한 바 있다. 애인 스마트폰에 신호를 보내면 사람이 껴안듯이 셔츠가 수축하는 것이다. 느낌상 실제 포옹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어두운 방 유리 상자에 곤충들을 넣어두고 빛을 비추어보자. 빛을 향해 달려들어 벽에 부딪친다. 어둠은 무명, 빛은 환, 벽은 고통의 은유이다. 무명에 빠져 기술의 환幻을 추구하는 한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무명을 밝혀서 기술을 바르게 활용해야 하는데 그 이치와 방법을 모른다.
아프리카 어떤 지역에 선진농법이 도입되어 수확량이 두 배로 늘었다. 이듬해 농부들은 농지의 절반에 씨를 뿌렸다. 먹을 만큼 수확하기 위해서였다. 절제를 모르는 서구인들보다 지혜롭다 하겠다. 엑소베이션exovation이라는 단어가 있다. 어려운 것을 선호하는 기술자 귀신을 내쫓는다는 의미의 엑소사이즈exorcize와 이노베이션innovation을 합성한 것이다. 과유불급, 넘쳐서 문제가 되니 쉬운 기술을 개발하고 제대로 활용해야겠다.
부처님은 빠알리어로 설법했고 세종대왕은 정음을 창제했다. 두 분은 쉬운 말로 중생 고통을 치유했다. 쉬운 말은 이해·전달이 용이하고 또한 진리에 가깝다. 쉬움을 지향해야 할 불립문자가 쓸데없이 어려워졌다. 스승은 손가락으로 권위를 삼지 말고 제자는 달을 보아야 한다. 어려운 친환경 차 개발보다 쉬운 자전거 개선에 나서야 한다. 생각을 바꾸면 기술이 쉬워지는데 그 생각 바꾸기가 정말 어렵다.
첨단제품, 불치병 치료약 등은 개발비가 많이 든다. 하지만 공공투자를 늘리거나 기업이 이익을 덜 가지면 싸게 보급할 수 있다. 흙으로 만든 자연냉장고, 흰개미 집을 모방한 생태건물은 소박하면서 저렴하다. 정치가 민주화되었듯이 기술도 보통 사람들이 개발을 주도하고 싸게 이용토록 해야 한다.
기술은 바로 쓰면 유용하지만 삼독三毒이 얹히면 고통을 유발한다. 부엌칼을 강도와 아이에게 주면 무섭고 위험한 칼이 된다. 기술은 위력과 매력이 있어서 사람들이 휘둘리기 쉽다. 진정 이로움을 주는지 자세히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기술도 인간이 만든 한 물건, 현묘한 불법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근본 마음과 현실 기술과 화엄세계가 만나는 지점에 그 해답이 있다.
| 불법의 정신문화로 기술문명의 고통을 치유
불교는 기술문명이 꽃피우기 훨씬 이전에 출현했다. 기술문명의 폐해를 미리 예견하고 정신문화의 공덕을 쌓아온 것은 아닐까. 부처님이 지금 세상에 오신다면 어떤 행태를 보이실까. 표정은 순박하고 말씀은 어눌하며 행동은 굼뜨실 듯하다.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비행기 타는 걸 재미있어 하실 지도 모르겠다. 기술발전을 긍정하면서도 어리석음 탓에 고통이 심한 것에 대해 연민을 느끼시리라.
현대사회의 병폐는 기술문명이 정신문화를 압도한 데서 비롯되었다. 기술을 수행의 대상, 보살행의 방편으로 삼아 물질과 정신의 조화를 도모해야 한다. 기술로 정신활동을 보완해서 판단을 지원하고 폭력·중독 행동을 제어해야겠다. 기술이 정신 분야를 프론티어로 설정하면 같은 물질 조건 하에서 행복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마음의 본질에 닿아있는 불교가 정신기술 발전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 쉽고 값싸고 착한 기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적정기술을 중심축으로 설정해서 탐욕스런 아귀에서 자비로운 보살로 거듭나야 한다. 쉽고 싸게 물건·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체가 공덕을 베푸는 일이다. 남보다 지혜롭게 열심히 하면 판매와 이익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사회적 책임수행의 일환으로 적정기술 개발을 지원할 필요도 있다. 불교계가 적정기술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성과물을 구입하는 등 작은 도움들을 많이 주면 좋겠다.
자등명 법등명, 마음의 빛으로 법을 밝혀야 한다. 세속의 법인 기술은 삼독에 물들어 색이 되었다. 빛은 합칠수록 맑아지고 색은 섞을수록 탁해진다. 마음으로 기술을 비추어야 색이 맑아지고 고통이 치유된다. 마음이 기술에 종속되지 말고 용用에 무애자재해야 한다. 스스로 주인 되어 진리를 굴리면 기술뿐 아니라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기술은 남용하거나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지혜롭게 굴려야 할 법륜이다. 불교는 기술을 이해하고 기술은 불법을 수용해야겠다. 불교와 기술의 새로운 만남이 축복의 미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이언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와 부산발전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바른경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교와 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불교와 경영의 접목을 모색하고 있다.
* 기사에 나오는 3D전자 의수 제작업체 만드로의 홈페이지 주소는 mand.ro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