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인구의 하락과 교단의 공공성
● 통계청이 2015년 종교 현황을 발표했다. 불교인구가 10년 전에 비해 300만 명이 줄었다. 교계는 충격에 빠진 모양새다. 생각해보면 예견된 상황일 수 있다. 전법의 현장에서는 새로운 통계치가 아닌 이미 체감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절에 가는 청소년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이미 오래됐고, 대학과 사찰 청년회의 회원 수 급감도 익숙한 풍경이다. 절을 찾는 신도 수가 줄어든 것은 수도권과 지방의 절 몇 군데를 방문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나마 절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지자체나 국고의 보조금 때문이란 말이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 때문에 교계 일부에서 ‘100% 전수 조사’에서 ‘20% 표본 조사’로 조사 방식이 변경돼 통계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표본 조사에서 인터넷 조사가 절반을 차지해 고령자가 많은 불교계에 불리한 조사라는 항의는 본질에서 거리가 멀다. 100만 명이 줄어든 가톨릭이 신자 수 감소의 원인을 “세례를 받았지만 실제로 자신이 가톨릭신자라고 인식하지 않는 사람이 백만 명이 넘는다는 걸 의미한다.”고 밝힌 것이나, 개신교가 100만 명 늘어난 원인을 개신교 내부에서 이단 종파로 분류된 여호와의 증인, 통일교, 천부교, 영생교 등 신흥 외래종파가 성장한 것으로 파악하는 시각은 교계와 대비된다.
● 살펴야 할 지표가 또 있다. 10년 전에 비해 종교인구가 9% 포인트 감소했고, 10대와 20대의 무종교인이 각각 62%와 64.9%이다. 앞으로 무종교인들이 갈수록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종교가 국민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불교가 지금 여기, 삶의 문제를 다루는 가르침이고, 고통의 문제를 어느 종교보다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국불교가 제 도리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서구사회에서 불교의 가르침이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러하다. 문제는 한국불교를 이루고 있는 교단이지, 불교가 아닌 것이다.
● 우린 이미 알고 있다. 버릇처럼 포교 프로그램 개발이나, 출가자 수를 늘리는 등의 개별화된 접근으로는 신도 수 급감을 풀 수 없다. 더 근원적이며 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오래된 지적이지만, 한국불교 교단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는 바로 공공성이다. 교단이 존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가 승가의 기본적인 의식주의 해결과 전법교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교단은 모든 스님들에게 안정적인 의식주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경전과 어록을 지속적으로 읽고 공부하며 수행할 공간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공공의 사찰에서 나오는 공공의 재원이 소수 승려들에게 집중되어 있고, 이 재원이 사유화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도는 것도 벌써 오래전 일이다.
● 승가는 이미 각자도생各自圖生과 자력갱생自力更生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절 집안 특유의 성질로 물리적인 저항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승가의 공동체성을 포기하고 개별의 사찰과 개별의 생활로 살아가려는 움직임이 곧 일어날 것이다. 교단을 지탱하는 스님들의 현재와 미래가 세속을 움직이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면, 신도들이 굳이 교단에 남아, 불교 신도라고 스스로 밝힐 만큼 자존감을 가질 수 있을까. 또 아들과 딸에게 세속과 닮아 있는 승가를 따르고, 믿고, 의지하라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공공 재원이 소수 승려에게 집중되어 있는데, 많은 스님들이 개인의 안위를 위해 각자도생하고 자력갱생하는 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한국불교 신도 수의 급감 소식은 한국불교의 공공성 문제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인 것이다.
저작권자 © 불광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