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경聽經
귀로 듣는 경전수행, 청경聽經
약 포장이 끝나고 잠시 이어폰을 뺀다. 손님에게 두툼한 약봉투를 건네면서 복용법을 상세히 설명한다. 온화한 목소리다. 손님은 통증에 시달렸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져서 돌아간다. 이어폰을 다시 귀에 꽂는다. 평일 낮, 안기순 불자가 일하는 약국의 모습이다. 2년을 채우면 약사로 일한 지 40년이 된다.
청경聽經을 주제로 취재를 나왔다고 하니 놀란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약을 지어주는 봉사활동을 15년 가까이 하고 있어, 그 일로 온 줄 알았다고 한다. 안기순 불자가 청경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빨간색 표지의 지장경 책날개에 ‘바를 정正’ 자가 빼곡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데 약 2시간 걸리는 지장경 한 권을 지금까지 청경한 횟수다. 700회 정도다.
“이런 방법이 있는 줄은 저도 생각 못했었죠. 경전이야, 읽고 쓰는 것으로만 알았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약국에서 일하면서는 경전을 읽고 쓰기가 어려워요. 독경이나 사경은 하다가 중단되면 다시 손에 잡기가 쉽지 않은데, 이 방법은 다른 일 하면서 할 수 있으니까 긴 시간도 무난하게 이어져요. 바쁜 가운데서도 항상 부처님 말씀을 가까이할 수 있는 수행법입니다. 일하면서 무심결에 듣다보면, 한 구절 한 구절이 귀에 들어올 때가 있어요. 마음에 다가올 때가. 그럴 때 참 좋죠.”
사경, 독경도 조금씩 해봤다. 대한불교약사회에서 정기적으로 아함경 공부도 하고 있다. 불교 인연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를 따라 도선사에 다녔는데, 청담 스님 계시던 시절이다. 그때, 청담 스님께서 신도님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지나가다 들었다.
“기도는 절에 오는 날만 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 데서나 하는 겁니다. 곳곳에서, 내가 있는 곳 어디서나.”
짓궂은 보살님 한 분이 되물었다.
“스님, 그래도 화장실은 안 되죠?”
“장소불문하고 하세요. 화장실에서라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청경을 할 때면 청담 스님의 그때 그 말씀이 떠오르곤 한다. 경전수행 가운데서 장소불문하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청경이다. 듣기만 하는데도 수행 효과가 있을까. 안기순 불자는 청경 전과 후, 변화를 체감한다.
“수행이란 게 보통, 어떤 절박함을 가지고 시작하잖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상황이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일단은 내 마음이 바뀌는 것 같아요. 이걸, 안달을 하면 내가 힘들잖아요. 똑같은 일을 좋게 해석해서 보면 내가 편안해지고. 그런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안기순 불자가 어떤 수행방법보다도 청경을 먼저 권하는 이유는 또 있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어폰을 빼고 소리 나는 대로 틀어놓으면 식구들하고 같이 들을 수 있어요. 식구들이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두더라고요. 그러면서 같이 듣는 거지요. 처음에는 혹시라도 싫어할지 몰라서 조그맣게 했는데, 지금은 아예 크게 해놔요. 같이 듣자고.”
| “법法에 젖어 있어라, 안개비에 옷 젖듯이”
청경은 불자들에게 낯설다. 청경의 ‘도구’가 현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CD 플레이어, 이어폰, 스마트폰, 녹음기, 카세트테이프 등이 청경의 도구다. 부처님 당시에는 부처님을 친견하고 육성 설법을 듣는 것이 법을 듣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것을 엮어서 시공간을 초월해 전달하고 있는 것이 경전이다. 경전을 원문 그대로, 혹은 강설로 풀어서, 혹은 생활에 빗댄 법문으로, 음성을 저장해 시공간의 한계를 또 한 번 초월해서 법륜을 굴린다. 무궁무진하게 반복할 수 있다. 이것이 청경이다.
사찰 경내를 거닐 때 야외스피커를 통해 귀에 들어오는 독경 소리, 할머니나 어머니가 곁에 조그맣게 틀어놓고 바느질하던 카세트 속 천수경, 우리 주위에 익숙하게 존재해온 것이다. 독경이나 사경과 마찬가지로 청경을 경전수행으로 볼 수 있을까? 서울 창동 공생선원에서는 ‘공부의 첫 단계는 성문聲聞이니, 법을 자주 듣고 참구하라’고 강조한다. 선원장 무각 스님을 만나 청경을 경전수행으로 볼 수 있는지 질문했다.
“당연합니다. 금강경에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공덕이 나옵니다. 여기서 수는 ‘받을 수受’입니다. 경전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말인가, 믿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믿고 받는다는 것은 법法을 듣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수受에는 듣고, 믿어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습니다. 지는 ‘가질 지持’, 확연히 자기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독송讀誦은 실천행입니다.”
경전을 수지독송한다는 것은, 경전이라는 어떤 물건을 ‘받아서 지니고 읽는다’는 뜻에 머물지 않는다. 법을 듣고, 믿어서 받아들여 확연히 자기 것으로 해서 행한다는 의미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그 첫 단계가 ‘듣기’다. 현대인이 청경을 생활화하면 어떤 이익이 있을까.
“삼혜三慧라고 하지요. 문사수聞思修입니다. 문혜聞慧는 법을 들음으로써 생기는 지혜를 말합니다. 경계가 닥칠 때, 무명의 상태에서는 업식이 경계에 대적을 합니다. 문혜가 생기면 경계가 닥칠 때, 나도 모르게 법문이 대적을 해요. 법답게, 여법하게 경계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이지요. 법을 자주 자주 듣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무각 스님은 자기 근기에 맞는 청경이란 ‘스승을 통해서 듣는 것’이라고 했다. 먼저 여러 법문을 듣고 자기 근기에 맞는 스승을 찾아야 한다. 스승을 정하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것,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는 것이고, 취사선택하는 아상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계속 여러 법문을 들으면 자기 고정관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스님은 스승을 만나 믿음이 서지 않으면 고정관념의 감옥을 벗어나는, 참다운 공부를 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일상생활 중에 하는 청경은 어떤 마음자세로 임하는 것이 좋을까.
“법法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잘 안 들리다가 나중에는 이해가 됩니다.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장애예요. 몰라도 답답하고, 알아도 진전이 없지요. 알 듯 말 듯 해야 공부가 됩니다. 거기서 스스로 깊이 참구하고, 알려고 해야 합니다.”
무각 스님은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참선이듯, 걸어가면서, 밥 먹으면서, 차타고 다니면서 청경을 하라고 당부했다. 잘하려고 애쓰면 힘들어서 오래 못하고, 게으르면 결국 물러서게 되는, 중도의 이치다. 스님은, 잠깐 하는 수행도 어려운데 ‘세세상행보살도歲歲常行菩薩道’를 어떻게 행하나, 의구심이 들 때 이 말을 기억하라고 했다. 항상 법을 들어 잊지 않고 촉촉하게 젖어있다면, 자연스럽게 무르익는 가운데 참다운 힘이 나온다는 것.
공생선원을 나서는 길에 신도회 부회장 주순중 불자가 툭 던지는 몇 마디, 마음이 움직인다.
“고요히 혼자 있는 시간마다 청경을 해보세요. 이만한 좋은 습관이 있을까요? 출퇴근하면서 차 안에서 들어보세요.”
자율판매대에서 ‘禪으로 뜻을 푼 천수경’ CD를 골랐다. 청경聽經, 언제 어디서나,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수행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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