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용암사에 도착해 눈에 들어오는 보리수나무 아래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땀을 식힌다.
보리수 잎을 통과해 들어오는 오후 빛은 부드럽고 아늑해 보인다.
마애불을 빨리 보려는 성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잠시 뒤 바람을 따라 꽃향기가 지나간다.
일어나서 보리수나무를 올려다본다. 매달린 꽃과 바닥에 떨어진 꽃이 반반이다.
계단을 올라 마애불상 앞에 섰다.
거대한 자연석 바위에 만들어진 고려시대 마애불이다.
둥근 갓을 쓴 불상이 남자, 네모난 갓을 쓴 불상은 여자라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선종은 아들이 없어
왕족인 원신공주를 후궁으로 들였다.
어느 날 공주가 꿈을 꾸었는데 두 명의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 남쪽 바위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다오.” 하였다.
공주는 왕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왕은 장지산에 사람을 보냈다.
과연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는 보고를 받은 왕은
즉시 이 바위에다 두 도승을 새기게 하여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했다.
오랜 세월 한곳에서 두 마애불상은 세상을 굽어보며 자리를 지키고 서있다.
아이가 없거나 병에 걸리지 않도록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함께 한곳을 지키며 나란히 험한 세월을 이겨온 마애불상의 모습이 새롭게 보인다.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에게 따뜻한 의지처가 되어준 두 불상은
서로에게도 굳건한 의지처가 되어주며 긴 시간을 지나왔다.
여름밤이 깊어간다.
멀리서 바라본 두 마애불상을 뒤로 하고 나도 의지하고 쉴 수 있는
가족 곁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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