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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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노래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8.0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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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만어사, 양산 홍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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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해雲海가 흘러들었다. 바다가 낮아지는 자리가 산이요, 산에 물이 차면 섬이 된다고 했던가. 수천 마리의 물고기가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 바위가 되었다는 만어사의 푸른 새벽. 가야伽倻의 왕 김수로가 46년에 창건한 고찰이다. 16세의 인도 공주 허황옥은 뱃길로 와서 김수로왕과 혼인했다. 그녀와 그녀의 오빠인 인도 고승 장유가 신라보다 300년 일찍 가야에 불교를 들여왔다고 보는 ‘가야불교 인도전래설’은 아직, 흐릿한 역사 속에 가려져 있다. 


| 물고기산, 광활한 대륙을 향한 가야불교의 꿈
이 땅에서 490년 간 지속되었으나 기록의 부재로 인하여 역사를 잃어버린 왕국, 가야. 『삼국유사』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나라 이름도 아직 없고 왕과 신하의 호칭도 없던 서기 42년, 하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하늘이 나에게 명하기를 이곳에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 하였으니, 너희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대왕을 맞이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부족장들이 춤을 추고 노래하니 하늘에서 내려온 줄 끝에 붉은 보자기에 금합이 싸여 있었다. 그 안에는 황금알 여섯 개가 들어있고 12일이 지나  다시 열어보니 여섯 아이로 변해 있었다. 용모가 준수하고 십수일이 지나니 키가 9척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이가 이윽고 왕위에 오르니 그 이름을 ‘수로’라고 하였다.

알에서 나온 여섯 아이는 가야의 여섯 부족을 다스리는 족장이 되었다. 김수로는 그 중 금관가야를 다스렸다. 지금의 김해 땅이다. 『삼국유사』는 민간에 전해지는 신이한 전설이나 신화를 그대로 실었다.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의 역사를 구전口傳에서 찾고자 한 것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수로왕비 허황옥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부친 꿈에 나타난 부처님의 계시에 따라 가야의 왕비가 되기 위해 김수로를 찾아온다는 일화다. 인도와 한반도 사이에 해로海路가 열리기 전일 터인데 허황옥은 어떻게 가야까지 올 수 있었을까? 김해에 가면 가야유적 가운데 허왕후 무덤 앞에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이라 적힌 비석이 서 있다. 여기서 보주태후란 보주에서 온 왕비를 뜻한다. 보주普州는 중국 후한 때 촉나라 땅으로 백성들이 두 번의 봉기를 일으킨다. 그 가운데 허씨 성을 가진 집단이 있었고 주동자는 허성許聖이라는 인물이다. 이때가 서기 47년, 허황옥이 김수로의 배필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때가 48년이다. 그렇다면 이런 유추가 가능해진다. 인도 아유타국이 멸망한 후, 그 후예들이 중국 보주 땅으로 건너가서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다음해 가야에서 왕가를 이룬 것은 아닐지. 

날이 밝아온다. 운해가 걷히고 넓고 길게 펼쳐진 너덜(돌이 많이 흩어져 깔려 있는 비탈) 지대가 드러난다. 폭이 100m, 길이는 500m에 이르는 바위계곡이다. 바위들이 서로 잇닿아 있어 이 바위에서 저 바위로 건너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본 단면에는 유난히 푸른 기운이 서려있다. 그래서 청석靑石이라고도 하고 또 종석鐘石이라고도 한다. 작은 돌을 들어 두드리니 바위가 범종소리를 낸다. 돌에서 나는 소리라고 하기에는 소리 끝이 맑고 청아하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편편한 바위에 누워 들으면 바람이 바위 사이를 훑고 지나가는 소리가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온다고 한다.

유장한 세월의 흐름이 만들어낸 장관 앞에서, 또 다른 옛이야기를 떠올린다. 옛적에 동해 용왕의 아들이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깨닫고 신승神僧이 일러준 대로 길을 떠나자 수많은 고기 떼가 뒤따랐고, 그는 나중에 큰 미륵돌로, 고기들 또한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다. 만어사 너덜지대의 꼭지점에는 커다랗게 솟아오른 바위를 불상 대신 모신 미륵전이 있다. 

하늘에서 보면 만어사 너덜은 물고기가 산을 거슬러 오르는 형세다. 가야의 형세 또한 바다에서 백제와 신라의 경계를 가르며 치솟는 모양이다. 금관가야는 남해바다와 닿아 있으면서 밀양강과 낙동강이 합쳐지는 유역권이었다. 내륙의 수운과 바닷길이 연결된 문명의 요충지다. 한반도 땅 끝의 작은 부족국가였으나 광활한 대륙을 꿈꿀 만했을 것이다. 가야가 꾸었던 대륙의 꿈은 가야의 멸망으로 이루어진다. 불교는 통일신라에 이르러 융성했다. 가야의 불교는 그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기록하지 못한 것일까, 스스로 기록을 지운 것일까. 붓다의 후예들이 멀리 가야에 와서 통일신라를 통해 불교융성의 원력을 이루고자 했다면 흔쾌히 묻어버릴 수도 있었으리라. 

바람이 분다. 돌의 노래를 들으려 귀를 기울인다. 지상의 나라인 것 같지 않은 만어사의 낯선 풍광 속에서, 장대한 대륙을 뚫어내려 했던 가야불교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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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자에서의 역사 사유
물 없는 물고기산을 내려와 양산 홍룡사로 향한다. 차로 1시간 거리, 그곳에 목마름을 씻어줄 폭포가 있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혀 사방으로 퍼질 때 무지개가 보인다는 의미가 이름에 담겼다. 홍룡虹龍폭포에 면하여 지은 홍룡사는 신라 문무왕 13년인 673년 원효 대사가 낙수사落水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물소리 너머, 이곳으로 객을 이끈 시 한 편 스친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 김수영, ‘폭포’ 전문

오랜 가뭄이라 그 줄기는 약하나 그치지 않고 쏟아지는 폭포를 본다. 폭포는 제게서 와, 제게로 떨어진다. 물결은 쉬지 않고 떨어지는 것인데, 소리를 듣는 자의 귀에는 쉬지 못하는 마음이 툭툭 바위에 부딪힌다. 무지개는 보이지 않는다. 폭포의 하강을 바라보며 역사를 사유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사가史家의 손으로 기록된 사실, 혹은 사실이라고 동의할 만한 것들의 조합만이 역사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민초들에 구전된 설화는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러나 동의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어진 또 다른 역사다. 은유와 비유로 우회하고, 때로 격한 감정은 신화화한다. 김수로의 탄생 설화가 그러하고, 인도 아유타 공주 허황옥의 혼사가 그러하다. 만어사의 물고기산이 그러하다.

기록의 부재로 안개 속에 휩싸인 채 천오백년을 흘러온 가야불교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 살아 있다. 끊임없이 이 순간의 삶으로 하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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