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 인류의 생존을 가름하는 위기
올해 4월 2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기후변화대응 아시아시민사회 컨퍼런스’ 개회식에서 필리핀 정부의 전 기후변화담당관 예브 사노Yeb Sano는 기조연설을 통해서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기후변화이고 기후변화가 빈곤을 악화시킬 것은 틀림없으며 인간의 개발에 엄청난 도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브 사노는 2013년 초강력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강타하여 8천여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당시 바르샤바에서 개최중인 UN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온실가스 감축을 눈물로 호소하고 전 회의기간 동안 단식을 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주목을 받았던 이다.
예브 사노는 “세계 기후교란에 존재하는 요인은 위험 자체의 요인이 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의 취약성, 경제사회의 취약성에 따른 것”이라며 “기후변화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빈곤의 악순환이 이어질 것”임을 재차 강조했다.
예브 사노의 주장처럼 기후변화는 인류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 가운데 하나다. 기후변화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징후들이 이미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200년 이내에 다가올지도 모를 생물종의 대멸종은 차치하더라도, 유례없는 폭염, 가뭄, 태풍과 홍수 등 기상이변과 재난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면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 가깝게는 2013년 필리핀에서 발생한 태풍 하이옌을 들 수 있다. 당시 하이옌은 15조원에 달하는 재난피해를 발생시켰다. 문제는 하이옌과 같은 초강력 태풍이 더 자주, 더 높은 강도로 발생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구온도가 상승하면서 적도부근의 수증기 상승이 증가해 초강력태풍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존 케리John Kerry 미국무 장관은 기후변화에 의한 식량부족과 물부족, 그리고 분쟁으로 인해 국제안보가 위협당할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오랜 가뭄에 의한 물부족으로 분쟁을 겪은 후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남수단이 이러한 사례를 대표한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나라의 주민들이라는 점이다. 하이옌과 같은 수퍼태풍은 중저위도에 속한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고, 이 지역에는 태풍에 의한 재난발생에 속수무책인 방재능력이 없는 저소득 국가들이 대다수 위치하고 있다. 식량부족과 물부족을 겪고 있는 나라들의 경우도,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지역의 저소득 국가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기후변화가 전 세계 빈곤한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동시에 빈곤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 UN은 세계 빈곤과 기아퇴치를 위해 올해 9월 새롭게 채택할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17개 후보군 가운데 ‘기후변화’와 관련된 목표를 포함시켰다.
| 국제종교계의 기후변화 대응
기후변화에 의한 재난발생과 그에 따른 피해가 증가하자 UN은 지난 20여 년간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의 배출을 감축하기 위한 논의를 이끌어왔다. 매년 전 세계의 각국 정부가 참여하는 UN 기후변화당사국총회와 더불어, 1997년 온실가스 주요배출국인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이행을 골자로 하는 교토의정서 채택 등을 통해서 온실가스 감축을 논의하고 각국으로 하여금 2008년부터 2012년까지 1차 온실가스 감축을 실행해왔으나 성과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각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의 생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여야 하는데, 기업을 규제하기보다는 그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과 같은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2012년 1차 온실가스 감축기간이 종료된 이후, 2020년부터 시작될 2차 감축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개도국도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지 않으면 함께 하지 않겠다는 선진국과 오히려 선진국의 온실가스배출로 기후변화의 가장 큰 피해당사국인 개도국의 입장 차이로 인해 지난 3년간 기후협상 과정은 난항을 겪었다. 비록 지난해 페루 리마에서 열린 UN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제2차 감축기간에 참여한다는 원칙에는 합의했지만, UN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구속력 있는 온실가스 감축계획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그리 전망이 밝지 않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협상을 모니터링해온 국제적인 NGO들은 국제사회의 구속력 있는 온실가스 감축계획에 대한 합의를 촉구해왔다. 이러한 NGO들 가운데에는 옥스팜Oxfam, 케어 인터내셔널Care International, 그린피스Greenpeace 등 국제적인 국제개발협력과 환경분야의 단체들과 더불어 카리타스 인터내셔널Caritas International과 CIDSE 등 가톨릭에 기반한 국제개발협력 단체, Christian Aid와 ACT Alliance 등 개신교 국제개발협력 단체들이 함께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 간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해온 이들 기독교국제개발협력NGO들은 이미 20~30년 전부터 기후변화가 주민들의 빈곤문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주목해왔고 UN기후변화당사국총회를 모니터링하며 국제사회의 기후변화대응에 개입해왔다. 또한 기독교단체들은 당사국총회에서 종교간 대화를 주도해왔으며,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도 전 세계 인구의 80% 이상이 종교인구라는 점을 들어 국제 종교계의 적극적인 개입과 참여를 요청해왔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을 보여 온 가톨릭 교황청의 입장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특히 전임 교황에 이어 여러 차례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약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기후변화가 갖는 부정의와 불평등 문제를 지적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국제시민사회로부터 큰 공감을 불러왔다.
올해 6월 전 세계 5,000여 명의 주교들과 40만 명의 사제들에게 전달되고 12월 파리기후변화당사국총회 이전에 수백 개의 언어로 번역될 예정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후변화에 대한 회칙발표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가 12억임을 고려해 볼 때 국제사회에 미칠 영향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INEB를 중심으로 국제불교계도 2012년 스리랑카에서 ‘종교간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대화’를 주관하고, ‘종교기후생태네트워크’의 설립을 주도하면서 기후변화대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또한 올해 4월말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과 명동성당에서 개최된 ‘기후변화대응 아시아시민사회컨퍼런스’를 통해서 아시아 시민사회의 기후변화공동대응 플랫폼 구축 기반을 다졌다.
| 기후변화 위기와 불교의 역할
대다수 기후전문가들은 현재 우리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의 위기가 인간 스스로가 만든 결과이자 화석연료 사용,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기반한 서구식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이 불러온 결과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파괴적인 경제시스템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다른 존재와의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보지 못한 채, 타자의 희생을 볼모로 개인의 물질적 욕망과 안위만을 추구해 온 인간의 무지와 탐욕이 사회적으로 확장된 결과다.
이러한 점에서 뒤늦게 참여했지만 국제불교계의 기후변화 대응은 고무적인 일이다. 다른 존재와의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대한 인식을 강조하고 인간의 무지와 탐욕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하는 불교적 가치를 통해서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위기를 늦추는 데 있어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태양과 바람 등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에너지전환은 중요한 대안이다.
그러나 인간의 끊임없는 소유와 소비욕망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에너지전환만으로 기후변화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상품 또한 온실가스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러한 상품의 재료인 자연자원이 유한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소비욕망은 타자의 희생과 불평등을 강요하고 결국 그 업보는 우리 스스로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착취와 무분별한 개발이 결국 인간착취와 기후변화 위기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다른 존재에 가한 고통이 인간에게 되돌아온다는, 상호연관성의 연기적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기후전문가들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정책과 제도를 채택하는 것이 기후변화 위기를 가장 빨리 해결하는 해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것 또한 개개인의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과 행동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개개인의 인식변화와 일상에서의 행동변화가 집단적인 힘을 구축하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확장될 때에야 비로소 국가정책의 변화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재의 실상에 대한 연기적 인식, 탐욕과 무지에 대한 성찰, 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와 나눔, 물질과 마음 어느 한 곳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인 소박한 삶의 방식을 강조하는 불교적 가치의 실천이야말로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해답이자 제자들을 향해 “많은 이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떠나라.” 하셨던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을 실천하는 길이다.
UN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만났던 해외의 이웃종교인들로부터 불교의 연기적 가치관이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다른 어떤 종교사상보다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하고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제 국제불교계가 그런 역할을 하기 시작했지만, 아쉽게도 한국불교는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하여 이렇다할 만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글을 마치면서, 가까운 미래에 한국불교가 기후변화 대응활동에 참여할 수 있기를,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의 이익과 안전, 행복을 증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민정희
현재 기후변화대응 아시아시민사회컨퍼런스 한국조직위원회 사무국장이다. 이화여대 불교학생회 출신으로 19991년도에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교육지도위원을 맡아 대학생 불교 활동을 해왔으며, 2002년 참여불교재가연대에서 국제협력국장, 2006년 (사)로터스월드에서 국제협력팀장과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오랫동안 국제불교 활동을 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속시켜왔으며, 작년부터 기후변화 관련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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