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방장천마주 嚗然放杖天魔走
고로분명각불차 古路分明脚不差
생사거래위일관 生死去來爲一貫
라라리리리라라 羅羅哩哩哩羅羅
꽝하고 주장자 놓으니 천마가 달아나고
옛길이 분명하니 발걸음 어김이 없네
나고 죽고 가고 오는 것이 일관되니
라라리리리라라 노래 부른다
- 서산 스님 ‘환향곡還鄕曲’
| 두려움도 초조함도 없는 본래 마음
노래 한 곡 하니 좋다. 서산 스님의 시입니다. 서산 스님은 진짜 멋진 분이세요. 어려서 출가를 해서 지리산에서 수행하시고, 해남 대흥사와 묘향산으로 가서 많은 포교를 하셨지요. 그 후에는 국가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큰 공헌을 하고 가신 훌륭한 어르신입니다. 『청허집淸虛集』이라는 청허 대사의 문집이 있습니다. 그 속에는 불교사라든지, 시문이라든지, 발문 같은 우리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훌륭한 말씀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속에 있는 시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내용인데, 고향으로 돌아가면 아주 편안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다 고향이 있으시죠? 누군가 “고향이 어디입니까?”라고 물으면 얼른 생각해서 “네, 경상도 남해입니다. 제가 남해에서 태어났어요.”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실제 고향은 어머니, 아버지가 고향입니다. 부모님이 고향이에요. 선사들은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 나의 참모습은 무엇이냐?)’이라는 화두를 잘 참구해서 본래의 자성自性을 깨달으라고 말합니다. ‘본래 자성’이라는 것은 맑고 밝고 깨끗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좋은 방편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면 모두가 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정토극락 세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를 하나하나 뜯어봅시다. ‘박연방장천마주’라고 하는 문장부터 볼까요? 스님들이 주장자를 꽝 치는 모습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주장자는 바로 마음의 신념이요 나의 원력입니다. 신념과 원력이 굳으면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 힘의 원력을 한 번 내리치니, 천마가 놀라서 도망갔다고 하는 내용이지요. 천마는 번뇌망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겁이 나고 무섭고 두렵고 초조한 것은 전부 마구니입니다. 원래 우리 마음에는 두려움도, 초조함도, 싸우고 싶은 생각도, 피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 본래 마음은 마치 허공과 같고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 부끄러움이 없으면 두려울 것도 없다
거울은 겁이 없습니다. 미워할 것도 없습니다. 거울은 누구든지 있는 그대로만 비춰줍니다. 성난 사람이 오면 성난 그대로를 비춰주고, 얼굴이 벌겋도록 한 잔 먹고 거울을 보면 그 모습을 비춰줍니다. 봉두난발을 해서 거울을 보면 그 모습 그대로 비춰줄 뿐입니다. 술 먹고 칼을 들고 찌르려고 해도 거울은 눈도 꿈쩍 안 합니다. 하하하, 네 모습을 네가 봐라. 나오는 대상의 그 모습을 그대로 비춰줄 따름입니다. 거울을 보면서 자기 모습을 보고 잘못된 것을 느껴서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새로워질 수 있는 사람이요, 그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대로 사는 수밖에 없겠지요.
그대로 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안 좋게 되겠지요? 그것은 악으로 가는 길입니다. 반면에 보고 깨달아서 새롭게 노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향상인向上人이라. 향상, 위를 향해서 선을 향해서 살 수 있는 훌륭한 미래가 보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수행을 잘 하면 모두가 다 아름다워지고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기도를 잘 하면 마음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항상 걱정과 근심, 스트레스를 받고 병이 납니다. 두려움이 없으면 모든 것이 평정을 이룹니다. 아름다워집니다.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입니다.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은 두렵습니다.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봐서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면 아주 훌륭한 사람이 돼요. 인도에는 ‘이칸티카’라고 불리는 부류가 있습니다. 이들은,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 죄를 짓고도 죄를 지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을 ‘이칸티카’라고 해서 개전불능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무리 이칸티카라도 제도 못 할 중생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느니라.”라고 말하셨습니다. 보살은 아주 미련하고 영리하지 못하고 못된 짓만 하는 그 사람의 곁으로 가서 그 사람의 불씨를 일으켜주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더불어 하면, 친구가 되어주면 됩니다. 안아주고 토닥여주면 인식이 바뀌면서 그 사람이 새로워집니다. 그 상태에서 인식을 바꾸도록 유도를 해줘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대승보살도의 실천입니다.
| 부처님의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겨라
두 번째 구절의 ‘고로분명각불차’라는 문장을 보겠습니다. 옛길이 분명하니 걸음을 떼놓는 데 조금도 잘못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신념이 투철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익혀서 올바르게 수행하고 생활하노라면 그것이 바로 옛길입니다. 부처님께서 걸어온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이 옛길이요 본래 내가 가지고 있는 불씨만 잘 살려내면 화로 가득히 따뜻함을 채울 수 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오늘 가난하다고 해서 남을 탓하지 말고 부지런히 하면 됩니다. 게을러서 안 되는 것이지, 부지런하면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예부터 내려오는 부처님의 길, 반야의 길이라는 진실의 행로는 분명하기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는 데 잘못될 것이 없다는 뜻이지요.
‘생사거래위일관’이라, 나고 죽고 오고가는 그 행주좌와 어묵동정 속에서 그러한 옛길을 잘 답습해서 살며 수행해가노라면 세상에 이렇게 좋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라라리리리라라’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출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요즘 저는 항상 이산혜연 선사의 발원문을 읽고 있습니다. 『금강경』도 자꾸 독송하면서 내 마음을 비우고비우고 또 비우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번뇌망상을 날려버리는 신심을 나누며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함께 웃고 즐겁게 사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부지런하게 살아야 행복해지는 까닭
『묘법염처경』이라는 경전을 보니 ‘게으르면 복덕이 적고 어리석음은 마음을 부수며 친한 사람도 야박해지고 좋은 도를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게으르면 복덕이 적어지고 어리석으면 마음이 새로워지지 못합니다. 자꾸 잘못된 일만 생각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리석음을 쫓아내야 해요. 어리석음을 쫓기 위해서 부지런하게 염불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일도 열심히 해야 돼요.
서산 스님의 시에서 얘기하는 옛길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갖추어진 길이 있습니다. 자기의 프로그램, 자기의 스토리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업입니다. 선업이 많은 사람은 좋게 살고 악업이 많은 사람은 힘들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악한 것이 좋아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악한 것은 반드시 옳지 못합니다. 항상 자기를 돌이켜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잘 점검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옛길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 조상으로부터 전해온 길이 있고, 부처님께 배우는 길이 있습니다. 옛길을 감에 있어서 열심히 신심을 잘 다져서 주장자를 쾅 내려놓으면 잘못된 것들은 슬슬 도망가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 기도 열심히 하시고 염불 많이 하셔서 신심을 잘 다지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해서 나도 편하고, 가정도 편하고, 온 세계가 편안한 정토세계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법산 스님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동국대학교 정각원장, 한국선학회 회장, 한국정토학회장,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 대한불교 조계종 고시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보조사상연구원장과 아태불교문화연구원 원장 등으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학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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