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통일의 중요성과 국제 정세의 변화
2015년, 우리는 분단 70년을 맞는다. 반면 독일은 통일 25주년이 된다. 베트남과 예멘 또한 이미 오래전에 통일이 됐다. 우리는 헌법 전문에 평화 통일을 국가목표로 규정하고 있고 1970년대 초 남북대화가 시작된 이래 600회를 상회하는 대화와 접촉을 진행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의 현실은 여전히 어렵다. 통일은 아직도 가까운 장래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을 향한 노력을 멈출 수는 없다. 통일을 말한다고 해서 통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분단 70년은 어느 순간 분단 100년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통일에 대해 고민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한반도의 발전은 통일에 달려있다
한반도의 통일은 왜 중요한가. 당위론적 통일론부터 실용적 통일론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으나 몇 가지만 제시해본다. 첫째, 통일은 역사발전의 장해를 제거하고 새로운 도약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분단은 역사발전의 단절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된 국가 중 여전히 분단 상태인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통일은 단절의 역사를 통합의 역사로 전환하고 유구한 역사의 지속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준다. 통합된 국가는 높아진 국제적 위상을 토대로 국가발전전략을 추구할 수 있다.
둘째, 통일은 분단으로 인한 고통을 해소하고 소모적 비용을 생산적 비용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 분단된 한반도는 항상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의 잠재성을 안고 있다. 북한의 도발은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핵 위협은 안보 패러다임의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위협은 안보 차원에서는 물론 정치와 경제, 사회의 제반 측면에서 과도한 비용을 지불토록 하고 있다. 이산가족의 한恨, 적정 수준 이상의 국방비 지출과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한국 기업이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말), 대북정책을 둘러싼 정치적·사회적 갈등, 한반도의 불안정한 이미지와 그에 따른 추가적 외교비용 등 분단으로 인한 비용은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그런 비용들이 통일 후에는 새로운 투자 자원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셋째, 북핵 등의 안보문제가 해결된 통일한국은 경제통합으로 경제도약의 기회를 제공한다. 북한 지역은 새로운 투자처이자 시장이 되며, 남북 경제통합의 시너지가 창출될 수 있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가 명실상부하게 연결되어 지역 공동 번영의 튼튼한 토대가 구축될 수 있다. 넷째, 통일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과 역할을 부상시키고, 통일한국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강한 중견국가로 등장하는 기회가 된다. 비핵평화를 달성한 통일한국은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가교국가로서 동아시아의 견고한 평화를 위한 평화촉진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동시에 지속가능한 지역협력과 발전의 기폭제 역할도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국제사회의 위상이 증대된다. 한반도 통일이 가져올 발전과 도약의 기회를 잡는 것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 역량을 키워 통일의 기회를 잡았던 독일
통일을 위해서는 다방면의 능력과 힘을 길러야 한다. 이것은 서독의 경우가 증명해주고 있다. 성숙한 민주주의 운영과 함께 타협하고 협의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했고, 유럽 속의 독일·NATO 속의 독일이라는 평화외교를 통해 주변국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했다. 이 속에서 서독은 경제력의 신장을 도모했다. 또 1972년 12월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 정권의 교체 여부에 상관없이 법·제도와 투명성에 기반을 두고 동독과의 관계개선 정책을 꾸준히 발의하는 등의 역량을 만들어갔다. 겉으로 통일을 말하지는 않았으나 통일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러한 역량을 효율적으로 동원하여 통일을 달성했다.
동서독과 남북한의 분단 상황에는 차이가 있다. 역사적 상황과 그 과정, 분단 시기 동안 서로의 관계, 각각의 국내 정세, 독일의 통일 상황을 초래한 국제환경과 한반도를 둘러싼 오늘의 국제환경들은 매우 다르다. 특히 현재의 남북한 관계는 1970년대 후반의 동서독 관계 수준에 비해서 훨씬 낮은 상태다. 예를 들어 동독주민들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유롭게 서독의 방송을 청취하고 시청할 수 있었다.
서독의 경험으로부터 통일 준비를 위한 교훈을 얻는다면 우리는 국내, 국제 및 남북관계 차원에서 준비가 미흡함을 알 수 있다. 국내적 차원에서는 대북 및 통일정책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갈등이 너무나 소모적이다. 생각은 다를 수 있고 차이가 있으면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타협하고 협상하는 정치가 아니라 배제하는 정치로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고 조정해나가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나와 우리, 그와 그들을 구분하는 이분법의 접근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국민적 합의에 토대를 둔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
통일 준비는 무엇보다 정치·사회적으로 성숙한 민주주의를 구비·운영하는 것이 우선이다. 합의된 법과 규칙도 지키지 않고, 편법과 반칙이 만연하며, 권한은 행사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 상황들. 자기집단의 폐쇄적 이익을 중시하고, 국민과는 괴리된 정치가 지속되는 등의 상황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통일 준비의 필요성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게 될 것이다. 통일의 물적 토대가 되는 경제적 역량도 꾸준히 신장시켜 나가야 한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우리의 대북 및 통일정책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먼저 쌓아야 한다. 김영삼 정부 이후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서 대북정책은 국가적 차원의 지속성보다는 특정 정부의 특성을 반영하는 변동성이 강했다. 따라서 국내 차원은 물론 국제 차원에서 정책의 신뢰성을 누적하기가 어려웠다. 정책의 가변성이 심할 경우 통일한국을 향한 우리의 정책은 국제적으로 확고한 지지와 협력은커녕 신뢰를 얻기도 어렵다. 한반도 통일은 동북아지역의 질서를 변경하는 일이다. 따라서 주변국들에게는 사활을 건 국가이익과도 직결된다. 따라서 통일한국의 비전을 제시하고 한반도 통일이 주변국들의 국가이익과 조화를 이루며 지역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북관계 차원에서는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먼저 이루어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북한 비핵화, 한반도 평화정착, 북·미 및 북·일 관계개선, 그리고 한반도 문제와 연계된 동북아 다자협력 등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한반도의 통일을 원만하게 이루어내기란 어렵다. 남북관계의 정상화는 이러한 문제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따라서 정치·군사적 신뢰구축, 교류·협력의 확대 및 제도화, 당국 회담의 상설화와 같은 조치들이 실현되어 관계가 발전되어야 한다.
| 통일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은 북한체제의 변화이다. 그런데 북한의 변화를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다. 때로는 강경하고, 때로는 온건한 수단들을 동원하고, 남북 쌍방 관계와 국제 협력을 잘 활용하여 북한이 국제사회의 합리적 일원으로 참여하도록 견인해나가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협력의 과정이 본격화되도록 하는 정책의 이니셔티브는 총체적 국력이 훨씬 우위에 있는 한국이 취해야 할 자세다.
통일을 향한 철저한 준비가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가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세계적 차원의 냉전구조가 해체되었을 때, 새로이 등장할 국제질서는 상호 의존과 협력, 공동 번영을 추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현실의 국제질서는 갈등과 분열의 소용돌이가 지속되면서 새로운 무질서의 시대가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테러, 대량살상무기, 기후변화, 환경오염, 국제금융위기와 재정위기, 인종·종교적 갈등, 국내 및 국제적 차원의 양극화 심화 등을 우리는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는 이러한 요인들과 함께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관계의 변화, 미·러 대립과 중·러 협력, 한·일 및 중·일 간 갈등,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일의 미묘한 경쟁, 한·미 동맹관계와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 간의 균형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우려,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미·일 대 중국의 미묘한 입장 대립 등 매우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오늘의 한국은 한반도 역사 이래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때문에 열강의 각축 속에서 힘없이 침탈당한 구한말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통일은 엄청난 현상의 변화다. 따라서 첨예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주변국과의 협력 속에서 북한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면 국가발전 전략으로서의 통일 추진 과정은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다. 통일의 혜택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용과 노력을 부담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고 기회를 가시화하기 위한 체계적이며 총체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의 의사에 반하여 분단되었으나 우리가 주도적으로 통일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통일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센터 소장. 미국 신시내티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직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미국 외교정책에서의 정책연구기관의 역할과 한반도 문제』, 『한국의 대미국 통일공공외교 실태』, 『한반도 통일에 대한 동북아 4국의 인식』, 『오바마 시진핑 시대의 동북아 국가들의 국내정치 및 대외정책과 한국의 대북 및 통일외교 전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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