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양평 용문사를 처음 찾았을 때의 일이다.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 높이 40m, 둘레 11m, 수령 약 1,100~1,500년 추정)를 가만히 지켜보던 할머니 한 분이 “이건 나무도 아니여!”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용문사는 동양에서 유실수로는 가장 큰, 이 거대한 은행나무가 수호하는 관광사찰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용문사의 행보가 심상찮다. 산사음악회와 산나물축제를 성황리에 개최하고, 친환경농업박물관 개원, 템플스테이 활성화 등을 통해 문화 사찰로 거듭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동진출가(童眞出家, 어릴 때 산문에 들어가 출가함)의 마지막 세대라 불리는 호산 스님(48)이 있다. 그가 바로 입소문으로만 듣던 스노보드 타는 스님으로서, 올해 벌써 11년째 달마오픈 스노보드 대회를 열고 있다.
| 스님은 힙합스타일?
: ‘스님’과 ‘스노보드’는 익숙치 않은 조합입니다. 스노보드와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졌습니까?
1995년 남양주 봉선사에서 재무국장 소임을 살 때, 인근의 베어스타운에서 겨울에 사고가 많이 나니 사고 예방 차원에서 기도를 좀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스키장 오픈하는 날 가서 기도를 해드렸는데, 수행하는 틈틈이 운동하라며 자유이용권을 주는 거예요. 그 후 한두 시간씩 운동하는 인연이 돼 스노보드를 처음 만나게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보드 타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죠. 가끔씩 보드 타는 친구들을 보면 힙합바지에 머리 물들인 모습이 눈에 띄고 자유를 추구하는 이미지가 강했어요. 그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보드에 끌려 배우게 됐습니다.
: 올해 11회째 달마오픈 스노보드 대회를 열고 있는데, 그 계기는 무엇입니까?
스님들은 어떤 무엇을 해도 잘해야겠다는 사심이 조금씩은 있어요. 좀더 잘 타려면 어린 선수들한테 가서 배워야 했어요. 그런데 나이 차이도 많고 스님이라는 부담 때문에, 자기들 세계에 안 끼워주는 거예요. 그래서 투자를 좀 했죠. 자장면과 아이스크림 많이 사줬습니다. 현재 국가대표 코치를 비롯해, 우리나라 보드 1세대 친구들이 제 보드 스승들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스노보드 대회가 없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들과 친해지고 보드의 열악한 내막을 알게 되었죠. 어느 날 선수들로부터 스님들이 대회를 열어주면 좋겠다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키고 상금으로 해외 전지훈련비 후원을 돕자는 취지로, 저와 주위 도반들이 십시일반 보태서 1,000만원을 모아 지산 스키장에서 첫 하프파이프(half-pipe, 반원형의 경기장을 오가며 묘기를 선보이는 스노보드 종목) 대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 해를 거듭하면서 달마오픈 스노보드 대회가 국내에서 가장 큰 대회가 되고, 국제대회도 열게 되었는데요. 어떤 변화를 거치게 된 것입니까?
2006년 4회 대회부터 취지를 바꿨어요. 스포츠 포교를 통해 불교가 젊어진다는 확신을 가졌고, 우리 불교계에서도 동계올림픽 꿈나무를 발굴 육성해보자는 목표를 세웠죠. 달마배는 아마추어든 프로든 모든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로서, 200명이 넘는 선수들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량이 우수한 외국 선수들을 많이 초청해, 같이 경쟁하며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국제 포인트가 있는 국제대회를 격년제로 열고 있어요. 무엇보다 성과가 있는 건, 희망이 보이는 꿈나무 5명을 발굴해 달마팀을 꾸린 것입니다. 현재 달마팀은 만 14세에서 18세 사이의 여자선수들로 꾸려졌는데, 달마팀을 통해 올림픽에 출전시키는 위치까지 도전하고 있어요. 피겨 스케이트도 비인기 종목이었지만 김연아 선수가 나오면서 인기 종목이 되었듯이, 달마팀에서 메달을 따면 스노보드 발전도 되고 자연스런 포교도 되리라 봅니다.
: 달마팀에서 메달이 나올 가능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정유림(15, 양평 단월중) 선수가 가장 기대주입니다. 집안 사정이 안 좋아져 부모님, 언니와 함께 1년 전부터 용문사에서 함께 지내고 있어요. 기량이 월등해 옆에서 꾸준히 뒷바라지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보드 탄 지 1년 만에 우리나라 대회는 다 석권하며 랭킹 1위에 올랐고, 작년 봄에 첫 출전한 세계주니어대회에서 7등에 들며 월드컵 랭킹 30위 안에 들었어요. 30위 안에 들어야 올림픽 출전권이 주어지거든요. 달마팀은 모두 하프파이프 선수들인데, 정작 사고는 유림이 언니인 해림(18, 군포 수리고)이가 먼저 쳤어요. 지난해 11월 국제스키연맹(FIS) 북미컵(NAC) 알파인 스노보드 여자부 평행대회전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알파인은 스피드 대회로서, 동양 선수로는 두 번째로 우승을 한 겁니다. 유림이와 해림이가 올림픽에 출전할 확률은 1년 전만 해도 0.3%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50% 이상 됩니다. 내년 소치 올림픽에 출전해 경험을 쌓고 한 단계 한 단계 오르다보면, 2018년 평창 올림픽 때는 충분히 메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 처음 스노보드를 탔을 때 주변 시선은 어땠으며, 스노보드를 통한 스포츠 포교의 긍정적인 효과는 무엇입니까?
아무래도 처음엔 어른스님들이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하지만 스님의 본분사를 모두 내려놓고 몰입한 것이 아니라 적당히 심신 수련하는 의미에서 보드를 탔고, 달마배를 열며 각종 매스컴에 좋은 이미지로 비치니까 인식이 어느 정도 나아졌죠. 보드를 타는 곳에도 포교가 있고 불심이 있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하는 일은 전체가 수행이고 포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스스로 배어 있으면, 운동을 해도 포교가 목적 아닌 목적이 되어 자연스런 포교가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해림이만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힘들어할 때 108배와 5박 6일 참선 수련을 하게 했어요. 자연스럽게 불심이 생기고 국제대회에 나가 우승도 했습니다. 그리고 방송과 인터뷰하며 불교 명상을 통해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동적인 것은 가장 정적인 것이 마음속에 자리잡혔을 때, 민첩하게 행동할 수 있고 실수를 하지 않게 됩니다. 스노보드는 격렬한 운동이기 때문에 정신세계가 성적을 많이 좌우합니다. 스노보드 선수들이 저를 보며 자연스럽게 불교를 접하게 되고 친근하게 생각하게 되니 간접적인 포교도 되는 것이죠. 요즘에는 선수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어 주례 설 일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스님들이 하는 일은 모두가 수행이고 포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스스로 배어 있으면, 운동을 해도 포교가 목적 아닌 목적이 되어 자연스런 포교가 됩니다.”
“사찰 경영은 남는 것으로 하려면 아무 것도 못 해요. 어려우면 어려운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시작하면 됩니다. 지금은 깨달은 부처님도 필요하지만, 대중과 함께 하는 보살이 더 시급한 시대입니다.”
| 복 짓는 주지스님
: 스님은 동진출가의 마지막 세대라고 불리우는데, 입산 계기는 무엇입니까?
소림사의 영향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스님들은 모두 무술의 고수라고 생각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보원 스님께 무술을 배우기 위해 성주 선석사로 입산했어요. 출가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느 날 선방스님이 걸망을 메고 솔밭 사이 오솔길을 따라 하산하는 뒷모습이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 보였어요. 그때 스님이 되겠다는 생각을 굳혔죠. 어렸을 땐 운동이 좋아 무술을 많이 했고,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는 선방 쪽에 있었어요. 용문산 상원사에서 4년 주지 살며 선방을 개원해 7년 더 있다가, 용문사로 내려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 용문사가 관광사찰에서 문화사찰로 거듭나고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용문사가 은행나무에만 의존해 관광사찰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이왕 절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무언가 하나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산사음악회와 산나물축제도 열게 된 거죠. 그리고 산사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기 위해, 차량을 통제하고 지저분한 전선과 오수처리를 지중화해 맑고 시원한 물길을 냈어요. 맨발로 1급수 계곡물을 따라 오르면서, 자연을 직접 피부로 느끼며 피로도 회복하는 거죠. 물길을 열면서 용문사를 찾는 연인원이 70만 명에서 100만 명으로 늘어났어요. 음악회 같은 경우는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닌 ‘나눔음악회’라는 테마로 열립니다. 유료 음악회로 진행해, 작년에는 3,400만원을 모아 지역 학생들 52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어요. 참가자들에게 복을 짓게 하고, 이익금은 지역사회의 인재 장학에 회향하는 거죠.
: 용문사 템플스테이도 참가자가 급증하고, 자체적으로 무술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용문사 템플스테이의 특징은 전 대중스님들이 각자 소임을 맡아 참가자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거예요. 스님들 생활을 그대로 참가자들과 함께 나누는 거죠. 작년에는 총 3,400명이 참여했는데, 따져보니 처음으로 흑자가 났더라구요. 그리고 용문사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바로 무술창작공연팀입니다. 작년 가을에 양평 지역의 5년 이상 무술한 아이들 7명을 모아 팀을 결성했어요. 팀명은 용문사의 ‘용(Dragon)’과 용문사・양평・영(Young)의 이니셜 ‘Y’를 합쳐, ‘드래곤 Y(Dragon Y)’라고 지었습니다. 현재 동안거 기간에 맞춰 하루 10시간씩 훈련하는데, 저녁 땐 매일 용문사에 와서 예불을 드리고 2시간씩 대북 치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산사에서 나온 무술과 타악을 결합해, 일단 올해 4월 말부터 용문사에서 주말 상설공연을 열려고 합니다. 난타, 점프에 이어 세계적인 공연팀으로 성장하길 발원하고 있습니다.
: 사찰에서 주지스님의 마인드와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스님이 생각하는 이 시대의 주지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이 시대 주지스님들은 정말 힘든 것 같아요. 복을 가장 많이 짓는 자리이기도 하고, 또 복을 가장 많이 까먹는 자리이기도 해요. 요즘은 주지스님이 잘하지 않으면 절대 신도들이 모이지 않아요. 예전에는 큰스님이 법문한다면 신도들이 구름같이 모였는데, 지금은 정보가 워낙 빨라 말로써 먹혀들어가는 시대가 아니에요. 발로 손으로 뛰고 직접 피부로 느끼게 해줘야 해요. 일단 대중들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에 절마다 특성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미래를 저축하려면, 당장 주위에 있는 젊은 아이 한 명부터 포교를 시작해야 합니다. 사찰 경영은 남는 것으로 하려면 아무 것도 못 해요. 어려우면 어려운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시작하면 됩니다. 지금은 깨달은 부처님도 필요하지만, 대중과 함께 하는 보살이 더 시급한 시대입니다. 힘이 있을 때 정진도 해야 하지만, 저는 선원에서 정진만 할 수 있는 근기가 부족한 것 같아요. 달마배 스노보드 대회나 무술창작공연팀 등 좀더 얽혀있는 인연들과 함께 어느 정도 더하고, 회향은 선원에서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호산 스님
스노보드 타는 스님으로 알려져 있으며, 올해 11회째 달마오픈 스노보드 대회를 개최하며 스포츠 포교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보원 스님에게 무술을 배우고자 성주 선석사로 입산했으며, 1980년 어느 선객의 하산하는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움직여 출가를 결심했다. 통도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봉암사, 해인사, 수도암 등 제방 선원에서 18안거를 마쳤다. 봉선사 재무국장, 상원사 주지를 역임하고, 1996년 상원사 용문선원을 짓고 7년간 수행했다. 이후 2007년부터 현재까지 용문사 주지를 맡고 있다.
제11회 달마오픈 챔피온쉽대회
●일정 | 2월 1일(금)~2일(토)
●장소 | 대명 비발디파크 슈퍼파이프
●문의 | 017-271-6558, www.dalmaop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