름수련법회가 재가불자들을 대상으로 여법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불교의 전통 승맥을 계승하며 16국사(國師)를 배출한 승보종찰 송광사는 타락한 고려불교에 새 생명을 불러일으킨 불일보조(佛日普照)국사 지눌 스님(1158~1210)의 정혜결사(定慧結社) 근본도량이기도 하다. 올해는 보조국사 열반 800주기를 맞아 다양한 선양사업이 펼쳐진다. 현재 송광사는 면면히 이어온 수행전통과 현대적인 대중불교의 요구를 잘 조화시키며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2004년 송광사 주지로 취임하고 2008년 연임한 이후 현재까지 송광사의 전통을 올곧게 이어가며, 새로운 전통 수립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영조 스님(59세)이 있다.
한국불교의 발전을 촉발시킨 위대한 불교개혁 운동
12세기 고려불교는 정치권력과 결탁함으로써 순수성을 잃고 세속화와 기복적인 성격으로 흐르고 있었다. 내부적으로도 선종과 교종이 극심한 대립과 갈등 양상으로 치달으며 혼탁해져 갔다. 이에 보조국사가 수행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정법을 바로 세우기 위해 주창한 것이 ‘선정(禪定)과 지혜를 함께 닦아나가자’는 정혜결사 운동이다. 당시 불교 현실을 직시하고 냉철한 진단과 대안을 통해, 종파적 대립을 회통하며 전통적인 수행 체제를 확립한 보조국사의 결단이 있었기에 한국불교의 간화선 전통이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보조국사를 한국불교의 중천조(中闡祖)이자 중흥조(中興祖)로 일컫는다.
“정혜결사는 세속화되고 파벌화된 고려불교를 바로 세우고 한국불교의 발전을 촉발시킨 위대한 불교개혁 운동입니다. 그 근본도량인 송광사에서는 보조국사의 가르침을 따라 참선과 간경을 균형있게 조화시켜 오로지 부처님의 정법을 참구하는 전통을 꿋꿋이 지켜가고 있습니다. 그 당시와 현재의 한국불교를 단편적으로 비교하기는 힘들겠지만, 오늘날 한국불교도 적잖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 시대마다 겪게 되는 역경계를 부처님의 법에 따라 슬기롭게 극복해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의 정혜결사 운동은 바로 생명의 소중함을 새기고 온 누리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실천행으로 구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보조국사 열반 800주기로서, 송광사가 주축이 되어 보조국사의 가르침을 새기는 ‘2010 고려불교문화제전’이 1년 내내 펼쳐진다. 지난 5월 10일 보조국사 기일을 맞아 800주기 종재를 지냈으며, 유물특별전(송광사 성보박물관), 청소년 백일장 및 사생대회, 보조국사 유적 순례, 정혜결사 체험 템플스테이(7~8월), 국제학술대회 ‘보조지눌의 사상과 그 현대적 조명’(10월 8~9일), 보조국사의 사상과 생애를 정리하는 출판사업(『보조전서』, 『보조평전』) 등이 진행되고 있다.
“고려불교문화제전은 보조국사의 생애와 사상을 널리 알리고, 송광사가 간직하고 있는 불교전통문화를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시대 보조국사께서 고민했던 것을 지금 다시 생각해보며, 이 시대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균형
송광사는 한국불교의 수행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그러나 오래된 전통만큼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변화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그만큼 주지 소임을 살기도 버거운 사찰이다. 2004년 주지에 취임하고 연임한 지 3년, 영조 스님의 소회도 남다르다.
“송광사로 동진출가해서 부처님 은혜로 공부도 하고 잘 살았습니다. 그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으로 주지 소임을 맡게 되었지요. 송광사는 주지가 바뀐다고 해서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도량이 아닙니다. 주지를 하는 동안 ‘영조인 나는 없고, 오로지 어른스님과 대중스님들을 위한 시봉자로서 열심히 외호를 해야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살아왔습니다. 다만 스님들이 수행정진에 매진할 수 있도록 화합을 강조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부처님의 향기를 간직하고 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스님은 송광사가 전통적인 수행도량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하고 고양시키는 데 역점을 두고, 수행정진에 불편함이 없는 환경을 만들어나갔다. 이와 함께 대중불교시대를 맞아 송광사를 찾는 불자들이 편안하게 머물며 기도할 수 있도록 방사를 비롯한 제반 시설을 갖추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또한 그동안 소홀히 했던 지역 복지와 포교에 관심을 기울이며, 지역민들과 소통하며 불연을 맺어주고 있다. 순천 시내에 장애아동 전담보육시설인 우석어린이집을 개원해 30여 명의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으며, 부모와 떨어져 살고 있는 아이들과 송광사 스님들이 1대 1 자매결연을 맺어 후원하고 있다. 2005년부터는 매년 49일 동안 금강산림법회를 열어 대중법회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제가 능력도 원력도 부족한 사람이라 재임은 극구 안 하려고 했지만, 부득이하게 또 주지를 맡게 되었습니다. 불사는 누구나 할 수 있으니 초임할 때 미뤄뒀었는데, 재임하면서 저한테 주어진 소명인가 싶습니다. 송광사 8차 중창불사를 한 지도 30여 년이 지나, 당시 새롭게 모셨던 주요 전각의 부처님 옷이 많이 훼손됐습니다. 그동안 숙원이었던 개금불사를 시작해 현재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람을 재구성하는 마스터플랜을 짜서 추진 중입니다. 대웅전 앞의 성보박물관을 사찰 입구 쪽으로 이전해, 박물관은 물론 템플스테이 체험관, 강당 등 여러 문화시설을 갖춘 불교문화역사관을 새롭게 건립할 계획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웅전을 중심으로 스님들의 정진 공간, 불교문화역사관을 중심으로 신도들의 수행 공간이 자리를 잡아, 송광사가 전통과 현대가 잘 조화된 승보종찰의 면모를 어느 정도 갖출 수 있으리라 봅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선다”
대한민국 어느 사찰이 좋지 않으랴마는, 특히 송광사는 더 마음이 간다. 언제 가보아도 사찰을 찾을 때의 기대감보다 더 많은 만족감을 느끼게 해준다. 도량 안에 잠시 깃들다 가는 것만으로도 평온함을 주는 마음고향의 절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급격하게 변화를 가져오지 않으면서 완전히 정체되어 있지도 않다. 과거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적절한 변화를 거쳐, 누구나 와서 낯설지 않게 우리의 옛 문화를 거리낌 없이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아무리 전통이 좋아도 시대의 흐름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가만히 앉아서 전통 방식만 고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포교에 있어서도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지금은 중산층이 무너지고 극과 극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혀주려면, 그에 필요한 자금과 조직이 필요합니다. 인식과 발상의 전환으로 생산성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카드로 시주금을 받을 수도 있고, 대만의 불광산사처럼 사찰 내에 호텔을 지어 운영하는 등 수익사업을 펼쳐 자립적인 포교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통도 유지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스님은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미소로써 편안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어떤 어렵고 힘든 일에도 밝고 긍정적이었다. 승보종찰의 주지로서 수행전통의 가풍을 원만하게 이어온 것도, 보조국사 선양사업을 다양하게 진행하는 것도, 3만 5천여 명이 운집한 법정 스님 다비식을 사고 없이 잘 회향한 것도 모두 무한한 영광이며 큰 복으로 여겼다. 복을 지을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독 4대강 사업에 있어서는 큰 우려를 나타냈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고 수없이 많은 생명을 앗아가며, 국민에게 아무런 이익도 돌아가지 않는 데다 불교계에선 문수 스님의 희생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스님은 인터뷰를 마치며, 물질만능의 경쟁사회에 내몰려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격려와 위안의 말씀을 전했다.
“돌이켜보면 어렵지 않은 시절이 어디 있습니까. 어렵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습니다. 나만 외롭고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닙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어떻게 주체로서 그 시대를 이끌어가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위로만 쳐다보며 가다보니 허덕거리며 살게 됩니다. 보조국사께서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선다.’고 하셨습니다. 허공을 짚고 일어설 수 없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고요히 발밑을 내려다 보십시오. 내 그림자와 내 뒷모습을 볼 수 있을 때, 어려운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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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스님 ː 1968년 송광사에서 조계총림 방장 보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같은 해 송광사에서 구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이어 1971년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1973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후 제11대 중앙종회의원, 총무원 재무부장, 광주 증심사 주지, 재단법인 중앙교원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4년 송광사 주지로 취임하고 2008년 재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