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덕 칼럼
한라산의 식물을 식물학자들은 아열대(亞熱帶)식물, 온대식물, 한대식물(해발 1000m이상)로 크게 셋으로 분류한다지만, 한대식물대도 침엽수림(針葉樹林)대· 잡목대(雜木帶)· 고산식물대 등으로 세분된다. 한라산의 철쭉은 해발 1500m의 고지 이상에서 피는 듯한데 영실계곡에서 윗새오름을 향한 오백나한 암벽위에 능선을 타고 피기 시작한 철쭉은 광활한 윗새오름 주변의 고원을 다 메울 때가 가장 절정기여서 그 장관은 형언하기 어렵다. ‘한라산 철쭉제도 이 기간 중에 열린다. 본래도 드넓은 고원의 시원스러움이 분홍색 꽃에 뒤덮으면 더 한층 넓어 보이고 고원 밑으로 아련히 내려다보이는 해변의 마을과 산야와 섬 둘레의 바다와 하늘이 온통 푸른빛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색채와 고도(高度)의 복잡적인 조화이기에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장관이다.
금년 봄의 얘기다. 올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철쭉꽃 필 때 한라산 정상에 올라야지 그것이 안 되면 윗새오름의 꽃장관이라도 보아야지 하고 이른 봄부터 마음으로 별러 왔었다. 그러면 그 예행연습으로라도 한두 번의 한라산의 등산은 했어야 하는데, 영실계곡에는 세 차례나 다녀왔으면서도 선뜻 계곡의 오르막길 앞에서는 첫발을 내어디디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한라산은 주봉 정상을 향한 오르막길 이외에는 올라가기 어려운 난코스가 있는 산이 아니다. 그런데도 조난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첫째는 기 기상변화가 심해서 준비 없이 방심하고 등산했다가 당했을 때, 둘째는 산에 오르고 내리는 전구간이 길어서 기역이 감당하지 못할 때 그리고 동반자 없이 위와 같은 어려운 처지를 당하게 되었을 때라고 한다. 나는 나 자신의 기력에 대해서 이 몇 해 동안 시험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가늠을 할 수가 없어서 두려웠다. 특히 장시간 걷기를 계속했을 경우 무릎관절이 지탱할 수 있을지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철쭉제(금년에는 5월 22일)가 오기 전에 조카네 부부와 어린애기까지 일가 총출동으로 윗새오름까지 다녀온 일은 매우 고무적인 예행연습이 되었다. 철쭉제와 부처님 탄신일이 지나고 며칠 후 청명한 날씨를 택하여 동반자 없이 영실에서 시작하여 정상까지 7.1km 다시 정상에서 동쪽 성판악(城坂岳) 코스 9.6km의 동서 횡단을 무사히 마치고 동아론 감격은 이루 형언하기 힘들었다. 그것은 단지 자신이 체력에 대한 확인 때문에 오는 감격만은 아니었다.
’81년에도 일년동안 제주에 머물면서 스물한번이나 한라산 등산을 했고 그중 두서너 번은 가장 지루하다는 성판악 코스를 택했던 기억도 있다.
이 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툴두툴 돌을 깔아놓은 길이라 다리가 피로해서 나중 3분의 1쯤의 길은 뻗정다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그뿐 아니라 정상에 가까운 부분은 키가 낮은 누운 향나무· 시르미· 철쭉 등속이 덮여서 하늘을 볼 수 있으나 나머지 8km의 긴 길이 잡목·교목림으로 시야가 가려있어서 전혀 전망이 없는 것이 피로를 더해주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되는 듯 하다. 백록담에 올라갔을 때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그들이 올라온 그 가파른 길을 다시 내려갈지언정 성판악 코스로 내려가려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만큼 매력 없는 길이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가파르게 올라온 길을 다시 되돌아갈 것인가. 이 지루한 성판악 길을 택할 것인가. 시계를 보니 2시 20분 9.6km의 성판악 길은 보통 4시간 반 걸린다고 하는데 내걸음으로 천천히 간다면 6시간은 잡아야 할 것이다. 초파일이 지난 지 사흘이니 초저녁달이 뜰 것이란 계산을 하고 성판악 길을 내려섰던 것이다. “성판악 기로 내려갈 사람 없어요?” 하고 큰 소리로 정상에서 광고를 했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아 혼잣길을 걷게 되었다.
이제서부터 혼자 해동갑해서 걸어야 할 먼 길을 생각하니 자연히 침착해졌다. 가령 발을 헛디딘다든가 해서 발이라도 삐면 기운이 있다 해도 꼼짝 못하게 되고 도움을 청할 사람조차 없는 형편에 난감할 것이 아닌가. 처음엔 기력이 모자라서 지쳐 떨어질까 염려했지만 그보다 위의 걱정이 앞섰다. 발을 내리 디딜 때 되도록 이면 밟기 쉬운 판판한 돌을 가려 디디고 그 대신 시간을 넉넉히 잡아서 천천히 걷기로 하였다. 관세음보살 염불이 길벗이 된 것을 물론이다.
몇 시간 동안 긴 도정을 걸으면서 지난 한 해 동안의 자신의 변모에 대해서 생각한 것이다. 7년 전에는 내 걸음이 이렇지 않았다. 골라 밟으면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미끄러지듯 앞으로 내닫는 그런 걸음이었다. 그래서 나중엔ㄴ 다리가 마치 로보트식 걸음처럼 굴신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는 다리가 피로할 만하면 잠깐 나무그늘에서 쉬면서 무릎관절을 풀어주기도 하고 신발을 벗고 발바닥을 문질러 주기도 하다. 도중에 한번은 버너로 물을 끓여 차를 마시며 속을 풀어주기도 하였다. 아무리 따분한 길이라 해도 햇빛과 새소리와 신록의 싱그러운 향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라곤 볼 수 없으니, 가끔 나뭇가지에 길표로 댕기를 드린 것을 보아도 반갑고 심지어 길에 깔아놓은 돌을 밟으면서도 인간의 고마운 뜻이 전달되는 언어같이 느껴진다. 인간의 고마움을 인간 없는 데서 느끼는 것이다.
조금 전 정상까지의 오르막길에서 한 중년부인이 소리치던 말이 생각난다. “정말 이건 육신과 정신의 싸움이로군!” 정신이 육신을 이긴 사람만이 한라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인데 나 역시 그 말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동조 찬성하는 웃음을 보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심신투쟁적인 인생관에서 나온 말임을 이제는 알겠다. 정신이 육체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육체를 달래며 보살피며 측은히 생각하는 마음에서 산길을 내려오니 놀랍게도 보통표준 보다 더 짧은 4시간 만에 성판악 휴게소까지 내려온 것이다. 내가 예정했던 시간보다 2시간이나 단축된 셈이다. 그러고도 한 곳도 아픈 데가 없었다. 만일 우격다짐으로 육체를 혹사하면서 내려왔다면 패잔병처럼 초죽음이 안되었겠는가? 이것은 심신협동적인 인생관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경쟁사회에 길들여져서 ‘이긴다, 진다’는 표현을 남용하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표현뿐만 아니라 생각의 차원에서 모든 발상법이 승부(勝負)에 얽매여 살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삶의 실상은 그게 아니다. 산길에 돌을 깔아놓은 일의 차원에서 해놓은 일이라고 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직업 그 밑바닥에 있는 인간의 보살핌과 사랑을 근원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의 회복이 필요하다. 우선 나 자신의 육체에 대하서 이제 때가 되면 헌 오승ㄹ 벗들이 버리고 갈 육체에 대해서 무자비하게 혹사하는 일은 없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본디 마음과 몸이 둘이 아니고 하나이거니, 마음을 편안히 하면 몸도 자연히 편하다는 것을 한라산 등산길에서 배웠으니 만시지탄(晩時之歎)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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