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등(石 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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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등(石 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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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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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그 속에 깃든 의미

범종각에서 울려 퍼지는 하늘의 주악(梵音)을 들으며 불이문을 들어선 구도자의 눈앞에는 장엄한 불국세계(佛國世界)가 펼쳐진다. 부처님이 계신 법당(법당(法堂), 우뚝 솟은 탑, 그리고 수많은 장엄의 조형물들….


그러나 탑과 법당의 위용에 가려 쉽게 지나쳐 버리기 쉬운 매우 가치 있는 조형물이 탑 또는 법당 앞에 다소곳이 서 있다. 그것이 석등이다. 석등은 돌로 만든 등기(燈器)이다. 어둡고 깜깜한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로 비추어서 불성(佛性)을 밝혀주는 법등(法燈)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석등은 방형(方形) 또는 팔각형의 지대석 위에 8각의 복련석(覆蓮石 : 연꽃을 덮어 놓은 모양)을 얹고 그 위에 8각의 긴 간주를 세우며, 다시 8각의 화사석을 받치기 위한 8각의 앙련석(仰蓮石 : 연꽃이 하늘을 보고 활짝 피어있는 모습)을 얹고 4방으로 화창이 뚫린 8각의 화사석(火舍石)위에는 8각의 옥개석, 옥개석 정상에는 보주를 얹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왜 이들 석등은 전체적으로 8각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화창은 4방으로 뚫려있으며, 정상에는 보주가 놓여있는 것일까?  불교 및 미술사 학자들은 8강을 불교의 기본 교리인팔정도(八正道)로 풀이하고, 불빛이 새어 나오는 4방의 화창을 사제(四제)의 법문으로풀이하고있다. 정말 타당한 풀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필자는 감치 이 팔정도와 사제를 기본으로 삼아 왜 석등이 아래에서부터 그와 같은 형태를 취하게 되었는가를 유추해 보고자 한다. 연꽃은 불교의 상징화(象徵花)이다.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더러운 흙탕물이 묻지 않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꽃이다.

석등에서 연꽃이 땅을 덮고 있는 모습을 취한 것은 모든 갈등과 모순과 잡된 것이 가득한 세속에 몸담고 있지만, 결코 그것에 의해 물들지 않는 경지에 있다는 것을 표출시키기 위한 것이다.  연꽃에 흙탕물이 묻지 않듯이 팔정도를 올바로 수행하는 구도자에게 세속의 그릇됨이 결코 침입 할 수 없다는 것을 상징화하고 있다.

팔정도. 그것은 여덟 가지 실천 덕목이다. 진리의 세계로 곧바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곧 팔정도이다.
① 바르게 보라[正見].
② 바르게 생각하라[正思].
③ 바르게 말하라[正語].
④ 바르게 행동하라[正業].
⑤ 바르게 생업을 유지하라[正命].
⑥ 바르게 수행하라[正精進].
⑦ 바른 신념을 가져라[正念].
⑧ 마음을 바로 잡아라[正定].
팔정도의 실천은 세속의 잡된 인연으로부터 능히 수행자를 지켜주는 갑옷과도 같은 것이다. 구도자가 팔정도의 수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처염상정(處染常淨)의 길로 들어섰음을 뜻하는 것이요, 그것이 석등에서 8각의 땅을 덮은 연꽃[覆蓮]으로 상징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다음 8각의 기둥(간주)이 위로 쭉 솟아있다는 것은 팔정도를 닦아 차츰 완숙한 경지로나아감을 뜻한다. 이제 구도자가 팔정도의 수행을 깊이 닦아 애써 올바른 것을 닦으려하지 않더라도 팔정도와 한 몸이 되어 진리의 세계를 향해 자연스럽게 승화되어 가고 있음을 상징화한 것이다.

구도자는 차츰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되고, 마침내 하늘을 보면서 활짝 피어난 연꽃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활짝 핀 연꽃, 그것은 팔정도의 완성을 뜻한다. 그 위에 화사석이 있다. 화사(火舍)는 불[火]의 집이다. 그 불은 진리의 불이다. 어떠한 진리인가?  부처가 깨달은 진리이다.

팔정도의 수행을 통하여 체득한 최상의 진리이다. 그 진리의 불이 화사석 안에서 타오르고 있고, 그 진리의 불이 4방으로 난 화창을 통하여 뿜어 나와서 어둠의 중생계(衆生界)를 밝혀주는 것이다.

말을 바꾸어 보자. 화사석, 그 안에는 부처님이 계신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불상의 대좌는 석등과 같이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모습 또한 복련과 8각의 중대석과 앙련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불상의 대좌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살펴볼 때 앙련 위에는 부처님과 부처의 경지에 준하는 보살만이 앉을 수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예술품인 석굴암 조각상 중에서도 사천왕이나 팔부신장,

심지어는 이 세상의 선악을 관장하고 심판한다는 제석천(帝釋天)이나 대범천(大梵天)까지 반석 위에 서있을 뿐, 연꽃 위에 자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삼국시대 또는 신라의 보살상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앙련이 아닌 보력위에 자리를 잡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석등의 앙련 위에 놓은‘불의 집[火舍] 속에 부처님이 머물러 계신다′고 보는것은 ’대좌의 앙련 위에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는 사실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 되어져야 하며, 그것은 조금도 무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석등의 앙련 위에 있는 불의 집인 화사(火舍)! 화사는 불빛이 비춰 나오게끔 화창을 뚫은 화사석과 멋있는 팔각 지붕의 옥개석, 옥개석 위에 놓인 보주로 구성되어 있다. 화사는 부처님의 집이다. 그 집속에 누가 있겠는가? 부처님이 계신다.

부처님은 불의 집 속에서 중생의 미혹을 밝히는 사제(四제)의 진리를 설법하며 계신다. 그리고 사제의 설법이 화사석 4방으로 뚫린 네 개의 화창으로 상징화된 것이다.그 화창을 통하여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사제의 불빛이 끊임없이 뿜어 나오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석등의 빛, 그것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빛이요, 진리의 빛이요, 마음의 빛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일심의 빛이다. 이것을 우리 모두 깊이 명심하면서 석등을 무심히 스치지 말고 합장하기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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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전공,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부편수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우리문화연구원 원장 및 도서출판 다라니 대표로 있다. 논문 및 저서로는「원효의 참회사상」「한국의 관음신앙」「 미타신앙의 역사적 전개」「늘 깨어있는 사람」「사찰, 그 속에깃든 의미」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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