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종사성과 삼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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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종사성과 삼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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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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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교학해설․ 유식학과 인간성31

 

 

 

유식학에는 삼종자성(三種自性)과 삼무성(三無性)이라는 학설이 있다. 이들 학설은 유식학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해심밀경(海深密經)과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그리고 섭대승론(攝大乘論)등에 설명되어 있다. 이러한 원전의 학설으 요약한 것이 세친(世親)의 유식삼십론(唯識三十論)이다. 그리고 유식삼십론의 게송(偈頌)을 주섟한 것이 성유식론(成唯識論)이다.

이와 같이 삼종자성과 삼무성에 대한 학설이 여러 곳에 설명되어 잇다. 삼종자성의 내용에 의하면 우리의 마음인 식(識)울 떠나서 외부세계에는 따로 진실한 경계<實境>가 없다는 사상을 세가지 성질로 설명하고 있다.

즉 삼종자성이란 ①인간은 아집(我執)과 법집(法執) 등의 번뇌를 야기하며 생활하는 모습을 설명하는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②인간의 정신생활과 그밖에 있는 외부의 물질계를 포함한 모든 자연계는 유일한 것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다인(多因)과 다연(多然)집합하여 창조하였음을 설명하는 의타기성(依他起性) ③변계(遍計)의 변뇌는 허구성이며 의타(依他)의 인연이 집합하여 성립된 삼라만상도 일시적 종재<假有>이며, 오직 진여성(眞如性)만이 영원한 존재이며 진실되고 또 만물의 체성<性>이라고 설명하는 원성실성(圓成實性) 등을 말한다. 그러나 이들 삼종자성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또 하나하나의 자성(自性)이 없다고 설명하는 것이 삼무성설이다.

삼무성이란 ①모든 번뇌의 성질은 허무한 것이기 때문에 자성이 없다고 설명하는 상무성(相無性) ②모든 것은 인연의 모임이고 자연생이 아니기 때문에 그 체성이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생무성(生無性) ③본래 진리는 허공과 같이 고정된 자성이 없다고 설명하는 승의무성(勝義無性) 등을 말한다.

이와 같이 삼종자성과 삼무성은 모든 번뇌와 물질 그리고 정신계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관찰케하고 깨닫게 하는 교리이다. 그러므로 이 삼종자성과 삼무성은 앞에서 설명해 온 모든 교리를 간단 명료하게 정리한 것이며, 동시에 진리와 비진리성을 잘 분류하여 설명한 교리하고 할 수 있다. 이제 이들 삼종자성(三種自性)과 삼무성(三無性)의 내용을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삼종무성

삼종무성(三種自性)은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중생의 현실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그 진리성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교리이다. 세 가지 성질이 서로 관계가 있으면서도 그 성질이 각각 다른 내용으로 설명된 것이 삼종자성의 특징으로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변계소집성

변계소집성 (遍計所執性)의 변계는 주변계탁(周遍計度)의 뜻이다. 주변계탁은 진리를 두루 착각하고 집착하며 인식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제칠말라식(第七末那識)과 제육의식(第六意識) 등의 마음이 진실하고 초연한 진리와 그리고 인연의 모임에서 형성된 삼라만상<諸法>에 대해서 그 진리성을 망각하고 오히려 아집과 법집 등이 집착을 나타내어 지말번뇌까지도 두루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교학에서는 능동적으로 망상을 나타내는 능변계(能遍計)와 수동적으로 집착되고 계탁(計度)되어지는 소변계(所遍計) 등 두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능변계는 제칠말라식이 제팔아라야식(第八阿 耶識)의 견분(見分)을 능히 망각하고, 또 진실성을 망각하여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아라야식의 견분이란 아라야식의 체성에서 나타나는 작용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 체성의 작용을 진실하게 관찰하지 못하고 고정된 실체로 망각(妄覺)하여 아집과 법집을 야기함을 뜻한다. 이것을 무명(無明)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체성이란 진여성(眞如性)과 불성(佛性) 또는 무아성(無我性) 등을 말하며 이를 계교(計較)하고 사탁(思度)한 것을 계탁이라 한다. 그러므로 계탁은 비진리적인 생각으로 진리를 대하거나 사물을 반연하는 심리작용을 뜻한다. 다음으로 제육의식(第六意識)이 육경(六境)을 상대로 능히 계탁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주변계탁이라는 말과 같이 주변(周遍)은 두루두루 어떤 것이나 다 상대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주변계탁은 제육의식이 어떤 대상이든지 두루두루 상대하여 선(善), 악(惡), 무기(無記)등 삼성으로 구별하며 인식함을 뜻한다. 그러나 제칠말라식은 오직 아라야식의 견분만을 상대로 아집을 야기하기 때문에 계탁의 뜻은 있지만 주변의 뜻은 없다고 한다.

이와 같이 제육의식과 제칠말라식의 주변계탁에 대하여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심식(心識의 변계에 대하여 각 학자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즉 난타(難陀)와 호법(護法) 등은 능변계의 마음은 오직 의식과 말라식에만 있을 뿐이고, 그 밖에 전오식(前五識)과 아라야식 등 오 팔식(五,八識)에는 전혀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안혜논사(安慧論師)는 모든 마음에는 허망분별(虛妄分別)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능변계와 망집심(妄執心)의 작용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만약 의식과 말라식을 제외한 전오식과 아라야식에는 능변계의 뜻이 없다고 한다면, 허망분별의 뜻도 없다고 보아야 하며 허망분별의 뜻이 없다면, 이는 곧 유루심(有漏心)이 아니라 무루심(無漏心)으로 보아야 하는 모순이 따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안혜논사는 유루(有漏)란 이미 허망분별을 자성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오식과 아라야식은 비록 계탁과 같은 근본번뇌는 야기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그 자성에 대하여 유상(有相)망상을 나타내는 미세한 분별은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안혜논사는 심식 전체의 분별심을 할할 때 전오식과 아라야식은 법집만 있고, 말라식에는 인집(人執)만 있으며, 의식에는 아집 그리고 법집 등 이른바 구생기번뇌(俱生起煩惱)와 분별기번뇌(分別起煩惱)등을 함께 구비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상과 같이 심식의 능변과 집착의 내용에는 각 학자마다 의견이 서로 다르다. 여기서 아집은 인연의 법칙에 의하여 형성되는 연기법(緣起法)을 망각하여 주관적인 실체를 고집한 작용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법집은 사물의 개체 하나하나가 인연의 창조임을 망각하고 그 무명에 의한 집착을 야기한 것을 말하여 법집이라 한다.

이상과 같이 우리 인간은 마음의 자성과 내외의 물체에 대한 무지 때문에 아집과 법집이 공한 것임을 망각하고 동시에 온갖 번뇌를 야기하게 된다. 이를 통털어서 변계라고 한다. 호법론사는 이러한 능변의 사상을 심식별로 분류하여 네 가지 로 말하고 있다. 그 네 가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심식이 두루 활동하되 계탁하지 않은것 <遍而非計>을 들 수 있는데, 이때의 심식은 무루의 제식 (無漏第識)과 유루의 선식(有漏善識)을 말한다.

②심식이 계탁은 하되 두루두루 광범위하게 하지않은 <計而非遍> 심식이 있는데, 이는 곧 유루(有漏)의 제칠말라식(第七末那識)이다.

③두루 계탁하고 또한 두루 주변하며<亦遍亦計> 활동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는 유루와 염오(染汚)를 겸한 제육의식(第六意識)을 말한다.

④심식 가운데 두루 활동하지도 계탁하지도 않은 <非遍非計>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유루의 전오식(前五識) 및 아라야식을 말한다.

이상과 같이 모든 심식의 계탁과 더불어 두루 활동한 것을 매우 명료하게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호법에 의하면 아집과 법집의 지속성은 만약 제육의식이 단절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말라식은 단절되지 않은 식이기 때문에 항상 범부적인 집착이 유지되며 동시에 여타의 심식<第八識>에게도 염오케하므로 이들을 일러 유루하고 부를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 계탁심(計度心)에 의하여 집착되어지는 대상은 어떤 내용들인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변계의 모든 심식은 인연법의 자성<依他起自性>을 망각하고 이를 집착하며 두루 계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연법이란 연생법(緣生法)이라고도 하며, 연생법은 정신과 육체 그리고 객관계의 삼라만상이 일인(一因) 또는 일연(一然)만으로 발생하거나 창조된 것이 아니고, 다인(多因)과 다연(多然)이 집착하여 발생되며 또한 창조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계이기 때문에 전혀 없다고는 불수 없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잘 관찰하면, 임시 모여 있는 것 뿐이며 구경에는 무상하게 흩어져 없어지고야마는 무(無)가 바탕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와 공(空)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식정(識情) 위에 나타나는 영상(影像)을 실제로 있는 것인냥 착각하여 실재의 <實我>와 실재의 법<實法>이 있다고 집착한 것을 무명이라 한다. 범부들은 이것을 아집으로 하고 법집으로 하는 미망의 생활이 시작되는 데 이러한 미망은 제육의식과 제칠말라식에 의하여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의타기성(依他起性)의 인연법이 망분별(忘分別)과 망정(妄情)에 의하여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 집착하는 현상을 당정현상(當情現相) 또는 중간존경(中間存境)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망각된 분별에 의하여 인식되는 실아와 실법을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라 한다. 동시에 이들은 마음 가운데 나타나는 이른바 상분(相分)과 견분(見分)의 연생법을 집착한 계탁분별(計度分別)의 현상이기 때문에, 이를 또 변계소집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 변계소집성은 인연가유(因緣假有)의 법을 착각한 것이기 때문에 그 체성이 없는 것이며, 체성이 도무(體性都無)한 것이다.

그리고 또 변계소집성은 허구의 것으로서 정만 있고 진리성은 없다고 해서 이를 정유리무(情有理無)라 한다. 비유를 들면 이는 마치 털이 없는 거북이에게 털이 있다고 하고, 또 뿔이 없는 토끼에게 뿔이 있다고 하는 비진리적인 판단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허구의 무지를 가리켜서 구모토각(龜毛兎角)이라고 이름하며 이러한 무지를 비유하여 깨닫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객관계의 현상이 마음에 비쳤을 때의 영상<相分>을 잘못 판단하여 번뇌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를 견분의 집착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변계소집성의 현상의 상분과 견분의 현상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마음에 비쳐지는 영상이 상분과 견분과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분별되는데 그 분별되는 영상이 실제로 있다고 착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와 비진리는 마음에 의하여 조작되는 것이며 이를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 한다. 그러나 진여의 경지는 망식의 반연처가 아니라는 것이다.

 

2)의타기성

의타기자성(依他起自性)은 물질과 정신<色心>의 현상 모두가 중연(衆然)에 의탁하여 생기하기 때문에 이를 의타기라고 한다. 중연이란 인연(因緣), 등무간연(等無間緣), 소연연(所緣緣), 증상연(增上緣) 등 사연(四緣)을 말한다. 이들 사연이 서로 관계지어져야 일념(一念)의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생각은연에 의하여 발생된 결과이므로 이를 연소생(緣所生)이라 하며, 이들을 구비하여 말하면 중연이 생기한 결과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중연이 모여 발생하고 생기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들 내용을 정신의 생기와 물질의 생기로 나누어 보면 서로 연(緣)의내용이 다르다.

첫째로 정신<心法>과 정신작용<心所法>이 생기할 때는 위에서 말한 사연이 모두 구비하여야 가증하다.

둘째로 물질계<色法>가 생기할 때는 반드시 인연과 증상연 등 이연(二緣)만 구비하여도 생기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정신계와 물질계는 인연에 의하여 발생하게 되는 것이며, 어떠한 것도 설사 일법(一法)이라 할지라도 자연생법(自然生法)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연생법(緣生法)인 색법과 심법은 모두 의타기성이라고 한다. 이는 심상(心上)에 임시로 세워진<假立>현상에 지나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거나 상주법이 아니라, 환(幻)과 같은 것으로서 임시로 존재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를 여환가유(如幻假有)라고 한다.

이러한 의타기성을 분류하면 염분(染分)과 정분(淨分)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를 백법(百法)에 의하여 분류해 본다면 심왕(心王), 심소(心所), 색법(色法),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등 94법은 유루연생법(有漏緣生法)이라 하고 또 염분이라 한다. 다음 정분의 의타(淨分依他)는 무루의 유위법(有爲法)을 모두 포섭하고 또 원성실성(圓成實性)인 진여법은 다 여기에 속한다. 이와 같이 의타기법은 유루와 무루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의타기성의 진리를 지혜롭게 관찰하지 못하므로 변계소집성을 야기하며 생사에 윤회하게 된다. 그러나 지혜롭게 관찰하면 곧 진리의 세계가 전개되는 것이다.

 

3)원성실성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원만하고 성취하며 진실함을 구족한 것을 뜻한다. 먼저 원만(圓滿)한 진여의 체가 모든 법에 주변한다는 뜻이고, 성취(成就)는 진여의 체가 항상 지속<常主>하여 생과 멸이 없고<不生不滅> 또 변화가 없는 것을 말한다. 진실(眞實)은 진여의 체가 모든 것의 진리가 되고 또 모든 것<諸法>의 실성(實性)으로서 허망한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므로 원성실성은 곧 불성(佛性)이며 모든 중생의 본성으로서 헛되지 않고<非虛謬>또 그 체성이 전혀 없지도 않다(非無體). 이러한 내용들을 무위법(無爲法)이라고도 칭한다. 무위법에는 식변무위(識變無爲)와 법성무위(法性無爲)가 있다. 식변무위는 능히 활동하는 정신세계에서도 불변의 정신이 있는 것을 말하며 능연식(能緣識)의 상분에 사물의 영상이 보여도 무위와 같이 변하지 않은 마음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정신의 행위인 유위(有爲)의 활동을 하면서도 변하지 않은 정신이 있기 때문에 이를 식변무위라고 말한다. 다음 법성무위는 마음이 변하는 상분<識變相分>이 아니고 진여법성(眞如法性)의 자체를 말한다. 여기에는 폐전진여(廢詮眞如)와 의전진여(依詮眞如)가 있다.

폐전진여는 언어로서 표현할 수 없고 때묻은 사고로도 미치지 못하는 진여를 말한다. 이는 오직 분별이 없는 지혜<無分別智>만이 증지(證知)할 수 있는 절대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지에서 볼 때 진여 또는 무위라는 명칭을 붙일 수 없는 것이 진여인 것이다. 이러한 뜻으로 진여를 이언진여(離言眞如)라고도 한다.

다음 의전진여는 진여의 진상을 규명하여 설명할 때 어쩔 수 없이 언어를 빌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말한다. 진여를 원만․성취․진실 등의 내용을 따서 원성실성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진여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언어를 빌리지 않으면 안되므로, 이를 흔히 의언진여(依言眞如)라고 한다.

이상으로 원성실성의 뜻을 살펴보았는바. 여기에는 다시 상무상문(常無常門)과 루무루문(漏無漏門)을 함께 설명하는 원성실성의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의타기성인 현상계는 무상과 유위 등 생멸무상(生滅無常)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인연법의 집합과 해산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틀림없는 진리의 운영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반드시 상주성과 무위성의 진여가 뒷받침하여 불변의 진리가 유지되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을 원성실성이라 한다. 그러므로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진리이다.

다음으로 루무루문(漏無漏門)의 교리는, 유루(有漏)는 인연법에 의하여 전개되므로 이는 의타기성에 속하고 무루와 무루유위도 원성실성에 속한다. 이들 루와 무루는 그 체성이 염오(染汚)된 것이 아니며 항상 전도(顚倒)를 떠나 존재하기 때문에 진실만이 있고, 또 두루 모든 경계를 반연할 때도 염오법을 떠나 항상 진여만을 반연하게 된다. 이러한 세계를 실현하고 사는 세계를 불보살의 세계라고 한다.

이상으로 변계소집성과 의타기성 그리고 원성실성의 삼종자성을 살펴보았다. 이 가운데 변계소집성은 망정(妄情)으로 미혹하여 실아(實我) 실법(實法)을 나타낸 것뿐이며, 실은 허구의 것이므로 이는 정유이무(情有理無)인 것이다. 다음 의타기성은 인연에 의하여 생기하는 현상계이기 때문에 상주하는 것이 아니며, 동시에 가유(假有)이기는 하나, 그러나 진실한 것이며 또 원성실성은 의타기성의 실성으로서 영원히 불변의 진유(眞有)를 유지시켜 주기 때문에, 이 둘은 서로 일체가 아니면서 또한 다르지도 않은 불일불이(不一不異)의 관계에 있다. 그러면서 이 둘은 진실된 이치만을 보존하고 있다고 해서 이유정무(理有情無)라 한다. 이상과 같이 일체의 만유를 삼성으로 분류하여 가르쳐 주는 것이 삼종자성이며 이러한 사상에 의하여 상무성(相無性) 등 삼무성의 사상이 성립된다. 즉 변계소집성은 본래 체상(體相)이 없는 것이므로 상무성이고 의타기성은 중연에 의하여 생기하며 자연생이 아니므로 생무성(生無性)이며, 원성실성은 근본 무분별지의 경계이며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승의(勝義)를 항상 구현하고 있으므로 이를 승의무성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이 삼종자성의 진리를 관찰하며 수행하면 종합적인 진리관이 더욱 뚜렷해지리라고 믿는다. <完>

 

吳亨根

․1932.8.3경북옥포출생

․동국대학교 철학박사

․현재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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