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오락까페전(往奧樂歌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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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락까페전(往奧樂歌廢典)
  • 관리자
  • 승인 2009.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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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만들기 2
“그래, 고 가시나들이 뭣땀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와룡동 막걸리집 ‘옥자네’에 하릴없이 모인 한량들은 이야기의 발단부에서 한참 뜸을 들이고 있는 백결시인에게 전개부를 채근댔다.  며칠 전 참으로 희한한 경험을 했노라고 운을 뗀 뒤, 백결 시인이 한참 구라를 풀고 있는 중이었다.
  
“아, 글쎄 옆자리 가시나들이 흘리는 말들을 주섬주섬 짜깁기 해보니까, 좀 있다가 춤을 추러 락까페에 갈 모냥인데 그곳은 술값이 제법 나오니까 미리 싸구려 술집에서 소주를 한잔 걸치고 난 후 알딸딸하니 시간맞춰 간다 그 말씀이야.” 말을 이은 백결 씨는 덜떨어진 청중들의 반응을 가만히 한번 살펴보았다.
  
“혹시, ‘내가 근사한데 가서 술한잔 사겠소’하며 가시나를 둘씩이나 꼬셨다. 뭐 그렇고 그런 얘기 아냐? 그날 주머니엔 소금출판사에서 받은 고료도 얼마간 이었을테고.“ 아니나 다를까 소설을 쓰는 육봉수가 초를 치고 나왔다.
  
“이 사람들아, 내 얘길 좀 더 들어봐. 젠장맞을, 술도 한잔 했겠다. 뭔가 가슴 속에서 불끈 치솟는 것이었어.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정신이랄까? 바로, 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치열한 작가정신이 내 가슴 속에 또아리를 틀었다 이 말씀이야. 말만 많이 들어봤지 그때까지 한번도 락까페라는 곳엘 가보진 못했거든.”

백결 시인이 손바닥으로 가볍게 탁자를 두드리며 조금은 감정이 과잉된 어조로 말했다. ‘치열한 작가정신’이라는 부분에서 ‘웃기고 있네!’ 라고 하마터면 말할 뻔한 육봉수가 외려 남두표의 눈치를 살피며 “그래서?”라고 맞장구를 쳐댔다.
  
“그래서, 술값 팔천오백 원을 치르고 난 후 신촌바닥 탐험길에 나섰지. 미지의 락까페를 찾아서 말이야. 그중 한 곳을 택했지. 이름이 ‘홀리’드만. 뭘 홀린다는 뜻인지 아님 홀리우드의 약자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간판이 제일 크고 요란하기에 그곳을 택했지. 헌데 그때 말이야. 예상하지 못한 일이 딱 벌어진거야.” 갑자기 정색을 하며 백결 시인이 말을 멈추자 남두표가 의자를 바싹 당겨 궁둥이를 의자 깊숙이 묻었다.
  
“아 글쎄, ‘홀리’로 들어가려는데 계단 입구에서 웬 중년의 사내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다가와서는 내 소매를 가만히 붙드는거야. 그러면서 뭐라고 그랬는지 알어?” “뭣이라고 했는데?“ 육봉수가 이참에는 호기심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저, 혹시 단속나오셨습니까?’ 그러는 거야. 나 원 참, 워낙에 내가 겉늙은데다 그날따라 곰들이 잘 입고 다니는 미색 작업복을 걸치고 있었거든.”
  
“아항!” 남두표가 콧소리를 섞어가며 감탄부호를 찍었다. 바야흐로 백결 시인의 얘기가 절정을 향해 치달리고 있었다. “근데 말야. 아, 그순간 좀 짖궂은 생각이 퍼뜩 들더라니깐. ‘이 친구를 한번 골려줘?”하는 생각 말이야. 그래서, 그 남자에게 이렇게 말해버렸지. ’가만히 한번 둘러만 보고 갈 생각이오.“ 그랬지.
  
“이제야, 진짜 이야기가 나오는 구먼!” 내내 조용히 듣고만 있던 김도엽 시인이 더 이상 못참겠다는 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래, 계단을 타고 록까페 안으로 들어갔어. 이건 완전히 별천지야. 젊은 애들 몇이 조명에 파묻혀서 희한한 춤을 추고 있더라고.
  
그때 웨이터가 나를 구석의 아늑한 자리로 안내 하더니 곧바로 쟁반 가득 과일안주에다 맥주를 얹어 오더라고.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난 그냥 무게만 잡고 있었지.”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백결 시인이 마른침을 삼켰다.
  
“너무 시끄러워서 오래는 있지 못하겠더라고. 겁도 나고 애들도 참 뭐 그런 곳을 좋다고 찾아드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가드라고.” 백결 시인은 그 대목에서 담배를 한 가치 빼어 물었다. 그러나 정작 불을 붙이지 않은채 말을 빠르게 이어 나갔다.
  
“그래, ‘홀리’를 빠져 나오는데 입구에 서 있던 예의 그 사내가 천천히 내게 다가오더라고. 그 순간 움찔했지. 헌데 그 남자가 내게 또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 허연 봉투를 하나 내 호주머니에 넣어 주면서 차비 하시라고, 다음에 또 놀러 오시라고 그러는 거야. 어눌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야. 허허 참. 난 고개만 한번 주억거리고는 그 골목을 천천히 걸어나왔지. 그리곤 만수갈비집 앞에서부터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도망쳐 버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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